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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평점 :





인간의 몸에 대한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객관적이라 생각되는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인 정보 역시 그 지식을 만들어낸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노란 벽지」주인공의 이야기처럼 여성은 오랜 기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못하도록 침묵을 강요받았고, 여성의 질병은 남성이 생산해낸 의학지식으로 진단되고 치료받았습니다. (p.29)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아프고 병드는 일이 더 자주 반복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건강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153)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세계의 질서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을 맞는 사람 입장에서 아프기는 매한가지이지요. 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수자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p.177)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이어서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이번 신작은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우리 몸이 세계라면>. 사무실 적정온도는 21도, 정말 모두에게 적합할까? 일제시대, 일본은 왜 조선인 혈액형에 집착했을까? 전자담배는 정말 몸에 덜 해로울까? 왜 어떤 약은 환자가 많아도 개발되지 않는 걸까? 유방암은 왜 고소득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사망률은 저소득층이 높은 걸까?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에 관하여 상식, 당위, 경험··· 몸에 기록된 지식을 질문하다. 1,120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문헌. 134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지시로, 파리 의과대학 교수가 쓴 흑사병 원인에 대한 보고서부터 유방암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세포 단위의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사회제도의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을 밝힌 최신의 논문까지. 시대와 공간을 횡단하며 지식의 최전선에서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경합과 지식인들의 분투를 담아냈다.
김승섭 교수가 이 책 전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식’ 그 자체에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건 그 생산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의 사례에서부터 현대의 연구까지 다루며 이러한 지식의 배경들을 드러내고 질문한다. 어찌보면 예민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함께 더 잘 살기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잘못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 것들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인지하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잘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의문을 가지며 연구를 거듭해야하는 것이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사실에 또 새로운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몰랐다. 내가 너무 등한시했나. 책을 다 읽은 후 저자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지,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를 위해,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