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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2851번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손수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1씩 줄어들었다. 한 번 먹을 때마다 1씩. 식사가 아니라 간식이더라도. 예를 들어 핫케이크 믹스 가루로 만든 머핀을 먹더라도 집밥으로 간주됐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 온종일 그 숫자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수업 중이거나 방과 후 친구들과 놀 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오늘 저녁밥은 뭐지? 엄마가 해준 카레 요리를 먹고 싶은데’ 라는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그 숫자가 시야에 나타났다. (p.11)
책상 구석에는 언제나 웃고 있는 사진이 놓여 있다. 당신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온화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 ‘그날’이 올 때까지 나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경찰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부모님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 일은 드라마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다. 혹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누구에게라도,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조문, 장례식, 사십구재, 납골. 의식을 치를 때마다 일상이라고 여겼던 나날들이 멀어져갔다. 이윽고 옛 일상은 사라지고 부모님의 사진만 책상 구석에 남았다. (p.66)
당신이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1만 6213번 남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숫자가 눈에 보였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였다. 그리고 오늘 ‘이상하다’는 ‘망했다’로 바뀌었다. (p.106)
열 살의 생일날,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647번 남았습니다.” 눈을 아무리 비벼 봐도 글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차려준 생일상을 한입 먹을 때였다. '3646' 눈앞의 숫자가 하나 줄었다. 그 후에도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는 하나씩 줄어들었다. 이러다 숫자가 0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2851... 1652... 999... 이 숫자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에 사는 누나가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는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계속 밥을 먹으면 언젠가 숫자는 0이 된다. 그럼 0의 의미는?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당신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5번 남았습니다, 당신이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1만 6213번 남았습니다, 당신에게 불행이 찾아올 횟수는 앞으로 7번 남았습니다, 당신이 거짓말을 들을 횟수는 앞으로 122만 7734번 남았습니다, 당신이 놀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9241번 남았습니다, 당신이 살 수 있는 날수는 앞으로 7000일 남았습니다. 이처럼 각 단편 주인공들의 눈에는 뭔가를 암시하는 숫자들이 보인다. 다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둘씩 차츰 줄어드는 숫자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점차 갈등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독자들은 서서히 깨달아간다. 시간은 늘 그렇듯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소중한 무언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 첫 단편부터 눈물이 글썽글썽, 마음을 제대로 건드린다. 우리 내일 말고 오늘 행복하기로 해요. 잃어버렸던 행복 되찾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