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모험 - 청춘의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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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순례자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던 순례자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대한 목표를 가진 개척자, 강인한 모험심을 가진 탐험가, 꿈을 잃지 않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낭만적인 시인이며 멋을 아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런 순례자가 세상에 있었던가. 아니, 듣도 보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p.18)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싶어 찾아온 순례길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앞으로도 그러할, 쉽게 바뀌지 않을 존재일 뿐이었다. 삶 자체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무거워도 어쩔 수 없었다. 짊어지고 저 멀리 산티아고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p.40)

 

남루해져 간다는 것,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거추장스러운 모습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는 것이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을, 세상이 부과했던 의무들을, 영문도 모른 채 당연시하며 좇아야만 했던 가치관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다. 벗어내고 벗어내다 보면 남루해져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등한시했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드러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맑고 투명하면서도 고귀함마저 느껴지는 남루함이었다. (p.75)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패치워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고 익히고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짜깁기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인수분해를 하면 분명 누군가에 귀속되는 조각들로 나뉠 것이다. 인간은 결코 짙은 개성을 가진 본연의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 개성 내지 정체성은 스스로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조각을 찾아나가는 모험이 아닐까. 흔히 여행을 ‘나를 찾는’ 여정이라 일컫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택지를 넓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낯선 곳을 여행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더 많은 책을 읽으리라. 그 여정에는 분명 찾고 있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지평선 너머에 있을 산티아고로 나아가는 길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p.147)

 

 

 

“어느 신화 속 낭만적인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는 순례자. 바로 그런 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깨닫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혀 낯선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그토록 꿈꾸던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새롭고 환상적인 무언가를 마주할 것만 같았다. 자기만의 모험, 자기만의 영웅을 위하여. 꿈과 낭만을 찾아 두 발로 9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장편 소설 <레지스탕스>의 저자 이우의 솔직 담백한 성찰과 고백 그리고 통찰.

 

 

책 속에서 나는 저자와 함께 발을 내딛으며 그곳을 거닐었고 함께 호흡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자고 눈여겨보았던 곳이었기에 한 장 한 장 책을 읽는 동안 푹 빠져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종교를 떠나서 누구의 아내가 아닌, 누구의 엄마가 아닌, 누구의 딸이 아닌 오직 나 하나만을 두고, 내 자신에게만 온 마음을 다 기울이고 싶었다. 지겹도록 걷고 또 걷는 이 길이 해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에 쫓기면서까지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붙들 이유가 충분할 만큼의 가치가 있으니까. 한 번쯤은 내가 속해 있는 이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훨훨 날아보길 갈망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삶. 그래서였을까. 저자의 뒷 꽁무니를 따라 함께 걷는 이 길은 나에게 꽃밭이자 가시밭길이었다.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날들에 대한 헛된 희망과 시기 어린 질투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저자는 말한다. “여정은 수단이 되고 행위는 목적이 된다. 모험을 떠나면 계획했던 무언가를 하게 된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다. 걷고 또 걷고, 가슴 설레이는 나만의 모험을 찾아서. 답이 없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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