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오싹한 한기가 스즈카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가 보낸 문자가 분명하다. 여름철 먹구름처럼 피어오른 불안감 때문에 도무지 작업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불안은 공포로 바뀌었다. (p.15)

 

도톰한 입술 사이로 교정기를 낀 이가 보인다. 악마의 미소를 보고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역시 순진무구한 웃는 얼굴로 비칠 테니,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p.203)

 

매일 함께 있다 보면 정이 붙을 거고 정이 붙으면 고생도 자연스럽게 즐거움으로 바뀔 테니 나중에 웃어넘길 수 있게 될 거라며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정은 붙었다. 증오라는 미운 정이. 타로의 가슴 속에서 그것은 매일매일 커지고 뒤틀려서 어떤 자극 하나만 가해지면 그대로 뻥 터질 만큼 아슬아슬하게 똬리를 틀었다. 그가 「오세이 등장」을 접한 건 정확히 그런 시기였다. (p.220)

 

 

 

트릭과 환상은 종이 한 장 차이? 신본격 미스터리 거장 우타노 쇼고와 일본 미스터리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이 책에 수록된 일곱 개의 단편은 에도가와 란포의 명작을 현대 시점으로 해석하여 재창조한 작품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 미스터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로 그로 말하자면 그전까지 서양권에만 있던 논리 기반의 수수께끼 풀이 소설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만든 인물. 이는 무려 백여 년 전의 일이다. 초기에는 지적인 순수 탐정소설만 썼지만 점차 작품을 괴기, 환상, 탐미, 활극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으로 확장하며 더 넓은 독자층을 확보해 국민 작가로 불릴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외국 탐정 소설을 가장 먼저 일본에 소개하고, 트릭을 분류하는 등의 연구를 했으며 신인 작가 발굴과 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작가이자 평론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모든 분야에서 시대의 첨단을 달렸던 인물. 만약 란포의 존재가 없었다면 오늘날 일본 미스터리의 번영 또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일본 문단에 에도가와 란포가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또 하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탐정소설도 집필한 까닭에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는데 저자 또한 그런 란포의 작품을 읽으며 자란 까닭에 그에게 있어 에도가와 란포는 단순한 선배 작가가 아닌 신 같은 존재! 언젠가 저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었는데 분에 넘치게도 그 꿈이 지금 이루어졌다.

 

획기적이다. 일 이십 년도 아니고 무려 백여 년의 이야기를 새롭게 탈바꿈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아쉽다. 정말 아쉽다. 저자의 말처럼 이 작품 전에 원작을 미리 읽었더라면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해가며 좀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무래도 이 기회는 뒤로 잠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우타노 쇼고, 역시 그의 클라스는 대단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트릭, 상식을 뒤집는 대반전으로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단편 하나하나 자신의 주특기를 여지없이 마음껏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내리꽂히는 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대충 백 년 전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고 봤을 때 정말 획기적이었다. 지금 사용되는 최신 IT기술을 이용해 란포의 걸작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되살려냈다. 보는 순간 바로 빠져들었다. 단편이기는 하지만 그리 짧지는 않았다. 그 분량 안에서 기발하고 재치있게 흥미거리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아냈다. 추리소설 덕후라면 엄청 좋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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