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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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그림을 뺀다면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귀찮은 건 싫어해도,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고(그러기 위해 남을 귀찮게 하기도), 친구들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건 좋지만 사람이 많은 건 좋아하지 않아 어디 잘 안 다니고, 하나에 집중하면 끝을 보지만 집중하지 않는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을 못 해 ‘허당’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별한 취미 생활이라고는 농구가 전부, 영화 보고, 음악 듣고, 먹는 거 좋아하고, 또 가끔 산책하는거···. 와, 세상에! 내 인생에 그림을 제외하면 정말, 뭐가 없구나! 이래서 그림을 꾸준히 그린 거였나 싶다. (p.21)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림이 필요한 곳은 적어지고 있으니 일러스트레이터란 직업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나름 잘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힘들어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듣고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선택한 것에 후회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 낙서로 시작했던 그림이, 이젠 누군가에게 작은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게 참 좋다. 무엇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해왔음에도 그림은 아직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신나는 일이니깐. 무슨 밥벌이든 장점은 부족하고 단점은 끝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결국 내가 이 일을 재밌어하느냐가 그 일을 하는 키가 될 텐데, 나는 불행하게도 이 단점 가득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이 재미있다. 아마 이 불행함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 (p.36)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참고 있었다. 불안정한 수입과 미래, 이를 떨쳐내기 위해 맹목적으로 감당했던 작업량,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8~9년을 미친 듯이 일했어도 남는 게 없는 커리어,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해 시들어버린 그림에 대한 순수한 욕심. 이 모든 게 나도 모르는 사이 곪아 터져버린 것이다. 번아웃이었을까, 공황장애였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애써 계약한 일들을 전부 파기하고 세상 밖으로 숨어야 했다. (p.59)

 

SNS에 그림을 올리고 활동한 지 1년이 넘었다. 그간 책도 한 권 나왔고 이모티콘도 나왔고 나름 바쁘게 살았지만 아직 부모님과 형, 친적들은 내가 ‘키크니’라는 걸 모른다.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창피한 건 더더욱 아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형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도 쓰고 있는데, 그걸 당사자들이 본다고 생각히면 “으으.” 난 정말 민망함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p.140)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sns에 일상 만화를 제 맘대로 자유롭게 연재한 지 1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제 삶 전체를 드러내는 만화가가 되어버린 키크니. 첫 책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에서는 댓글로 사연을 남겨준 신청자분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책 <일상, 다 반사>에서는 자신을 그저 그런 일러스트레이터라 칭하는 키크니가 주인공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본인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사는 게 지루하다면 일상, 다~ 반사! 만화의 소재는 주로 프리랜서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하고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루지만 별일 없이 사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다 반사해 버리겠다는 작가의 포부처럼 매일 똑같은 그저 그런 일상을 전복시키는 웃음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상을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고민했던 흔적을 더없이 솔직하게 에세이로 풀어낸다.

 

프리랜서? 겉보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자유로움에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니 이 직업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그 나름의 고충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생계도 유지해야 하고 마감일에 다음 작품 구상에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톡톡 튀는 입담으로 하루하루를 유쾌하게 만들어 나가는 키크니 작가. 이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재미가 우리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준다. 뭔가 기분전환이 된다랄까. 키크니 작가가 활동하면서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 : 일단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다! 그래, 일단 해보자. 그리고 안되면? 스톱! 일단은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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