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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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p.15)

 

한별은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본인의 기준에서 모두의 삶을 평가했다. 왜 안 놀아? 왜 안 해? 왜 안 가?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 물음표를 던져대는 한별에게 박지우는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왜냐면······ 나는 네가 아니잖아. 그 단순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인정하는 거니까. 내 삶이 네 삶보다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p.28)

 

가난의 민낯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쥐어짜이는 고통을 느낀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 이들을 보니 넌 좀 나은 것 같아? 여기서 안 태어나서 다행이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스스로가 역겨운 인간이 된 것 같다. (p.84)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치열하게 공부했고 성실하게 일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 가장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머지않은 미래는 찬란하게 빛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더 잔인한 것은 마치 공정한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p.103)

 

 

 

 

 

주인공 고복희는 올해로 오십 살이 됐고 평생 밥해주겠다던 남편은 요리하기가 귀찮았는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고복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민박에 가까운 호텔 ‘원더랜드’를 운영한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성격 탓에 호텔은 망하기 직전. 몇 달째 손님이라곤 새벽에 도착해 눈만 붙이고 떠나는 백패커 몇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호텔에 무려 한 달 동안 살겠다는 멍청이가 나타났다. 방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좀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나 왔다는 스물여섯 살 백수 박지우. 염치없는 이 투숙객은 직원의 연애사며 교민 사회 모임이며 고복희가 남편에게만 잠깐 열었다 굳게 닫아버린 마음속까지 온갖 군데를 들쑤시고 다닌다. 과연 고복희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원더랜드 땅을 탐내는 교민회 회장 김인석과 정신없이 떠드는 박지우 사이에서 원더랜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조금 이상하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무엇이든 원칙대로 하며 절대 타협하지 않는 여자. 25년 동안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할 때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은 ‘로보트’. 매주 토요일 밤 디스코텍에 가서 단 한 번도 춤추지 않고 지키고 있는 이상한 여자. 그녀가 바로 호텔 원더랜드의 사장 고복희다. 이렇게만 보면 그녀는 꽤나 까탈스럽고 이상한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녀도 알고 보면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사려 깊고 자상한 사람이다. 남들 눈에는 차가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단지 자기주장이 강한 것뿐이다. 그녀를 두고 겹겹이 늘어나는 오해와 갈등.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딱이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고복희가 이제껏 지켜온 삶의 원칙이다.

 

재밌다. 정말 단숨에 읽힌다. 고복희,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며 산다. 누군가 자신을 조롱하고 헐뜯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니까. 자신에게 떳떳하면 그걸로 족하다. 고복희 뿐만 아니라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박지우, 그녀의 삶이 나는 자꾸만 눈에 밟힌다. 박지우와 고복희의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물론 어른들이 봤을 땐 제가 웃기겠죠. 나라 탓만 한다. 그런 생각이시겠죠? 그치만 저도 노력하거든요? 제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요. 근데 다들 저만큼 한단 말이에요. 모두가 빡세게 살아서 제가 빡세게 사는 건 티도 안 나요. 안 빡세게 사는 애들은 잘사는 집 애들이에요. 빡세게 살 필요가 없는 거죠.”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현주소. 저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식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남 일 같지가 않네. 그 상황을 너무 자세히 알아버려 마음 한켠이 착잡하다. 청년 백수. 일을 하고 싶은데도 할 곳이 없다는 거, 누구를 탓해야 할까. 나라? 자기 자신? 부모? 시종일관 유쾌하지만 문득문득 머릿속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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