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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카르테
치넨 미키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스와노는 다시 의국에서 전자차트를 물고 늘어졌다. 루카의 최근 입원 기록을 죽 읽었다. 9월 4일부터 2일, 7월 30일부터 6일, 7월 3일부터 3일, 루카는 정신과에 입원하면 거의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퇴원했다.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차트를 읽을 때마다 무언가가 걸린다. 그러나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무엇이 걸리는지 잘 모르겠다. 눈꺼풀이 무겁다. 슬슬 한계였다. 어째서 수면제를 잔뜩 먹고 아침까지 푹 잔 환자 때문에 잠도 거의 못 잔 자신이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 거지. 슬며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자지 않았다? 문득,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스와노는 필사적으로 그 희미한 빛의 조각을 잃지 않으려고 뇌에 채찍질을 가했다. (p.38)
“알겠나, 우리는 환자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는 없어.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통계상 자료를 제시하고 가장 적합한 치료를 제시하는 것뿐이야. 우리가 제시한 모든 정보를 이해한 뒤에 환자가 선택한 사항에 의사가 참견할 수는 없어. 우린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p.71)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은 수련의로 2년 동안의 초기임상 수련을 받는다. 그 2년 동안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다양한 과를 몇 개월씩 돌면서 의사로서 기초 실력을 쌓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과를 선택해야 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인 준세이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2년의 수련의 생활을 시작한 스와노 료타. 그런 그의 앞으로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환자들이 나타난다. 매달 비슷한 날짜에 수면제를 먹고 실려 오는 여성, 초기 위암인데 내시경 수술을 하지 않고 굳이 개복 수술을 해달라고 떼를 쓰는 노인, 점점 더 커지는 기묘한 화상을 입은 어머니, 약을 먹었는데도 발작을 일으키는 소녀, 미국에 가서 심장이식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돌 출신의 배우······.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스와노. 그가 밝혀낸 환자들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기도의 카르테>는 저자가 2018년에 서점대상 후보작으로 올라서 주목을 모았던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이후 처음 발표한 신작이다. 소설은 다섯 편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이야기들은 환자들의 기도를 주인공인 스와노 료타의 시선으로 쓴 카르테(차트)로 그가 거쳐 간 각 과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범인을 잡는 미스터리가 아닌 동기를 찾는 미스터리! 상냥하고 다정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각 과마다 베테랑 의사가 환자의 몸을 고치는 동안 옆에서 세심하게 환자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마음속 상처를 달래주고 치료하려고 애쓰는 병아리 의사 스와노 료타. 그 덕분에 가는 과마다 인기 절정, 지도 의사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변함이 없다. 유머와 재치는 물론 인간미가 넘친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부담이 없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가슴 아픈 사연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스와노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상처뿐 만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까지도 보듬어 주는 이런 의사 어디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