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김훈종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일생은 무거움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

부자유를 친구로 삼으면 부족할 것이 없다.

욕심이 생기면 궁핍했을 때를 걱정하자.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원이요.

분노는 무사장구의 적이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모자람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p.25)

 

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게 하나 있다. 당신이 부자든 빈자든 공평한 것. 당신이 권력을 쥐고 있든 기층민중이든 공평한 것. 당신이 착하든 악랄하든 공평한 것. 당신이 똑똑하든 멍청하든 공평한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몸에 억만금을 두른 자도 결국 죽는다. 온 세상을 통일해 쥐고 흔들던 권력자도 결국 죽는다. 기껏해야 백 년이다. 이 얼마나 공평한가.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나관중이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으로 선택한 말이다.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지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유일하게 평등한 것, 다시 말해 ‘시간’을 진솔하게 소비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평등해진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내뱉은 대사가 유독 살갑게 다가온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나도 진정한 위너가 되고 싶다. (p.36)

 

《논어》곳곳에는 나를 지키는 공자의 자세가 엿보인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눈치 볼 것도 없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그저 묵묵히 ‘마이 웨이’를 가면 된다. 때론 둔감하단 평을 듣는 게 민감하단 평가보다 한결 낫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심지어 둔감력을 기르라고 역설한다. 둔감함은 ‘신이 주신 최고의 재능’이란 표현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어느 분야든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은 둔감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둔감력이란 곧, 공자가 강조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괘념치 않는 힘이다. 둔감력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에게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주변과 융화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화이부동의 경지다. 화이부동의 자세야말로 ‘혼밥’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눈치 좀 봐도 괜찮다. 다만, 동이불화의 마음을 벗어던지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화이부동을 가슴에 새겨 보라. 그러면 훨씬 더 행복해진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p.65)

 

제후들을 만나 늘 바른말을 쏘아대던 불편한 지식인, 맹자.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사에 남아 후세에 전해질 맹자의 모습’을 늘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맹자는 당장의 안락과 눈앞의 이익에 초연할 수 있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단순한 암기과목 내지는 재미난 옛이야기로 치부하면 안 된다. 역사 인식이 오늘의 내 삶을 결정하고 내 태도를 바꿀 수 있기에, 역사 교육을 제대로 세우는 일은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다. (p223)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찾겠는가. 유사 이래 결국 인간은 똑같고, 세상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은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논어》를 읽다 보면 이제 정말 유학의 ‘고전’인지 ‘현대생활백서’ 같은 자기계발서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공자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건 철학적 정합성과 정교함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논어》에서 사람살이의 구린내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공자는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처럼 고결하고 구름 위에 올라 붕붕 떠다니는 유형의 성인이 결단코 아니었다. 지극히 실리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저자는 지금 우리 시대 실생활을 바탕에 두고 동서양 역사를 거침없이 종횡무진하며 동양 고전의 정수를 읽어낸다. 단순히 고전을 원문 그대로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대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위트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 왈 맹자 왈 저자를 따라서 배우고 익히는 배움의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은 참 멀리도 내다봤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현재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생각에 별 흥미가 없었는데 이제와서 다시 들춰보니 그 속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져있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문제의 답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인간사 새옹지마. 재앙이 복이 되고 복이 재앙이 되고,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늘 불안하고 초초하고 무섭고 떨리지만 어쩌랴 이렇게 살다 결국 한줌의 재로 끝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짜증나고 답답할 때, 나를 알아주는 이 없을 때,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이제 고전을 읽어보자. 그 안에 위안과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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