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류 작업이라······ 클라리스 스탈링은 이번 건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아닐지를 영민한 비글처럼 가늠해봤다. 어떤 일거리가 될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됐다. 미가공 데이터를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하는 고되고 단조로운 작업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떤 직무로든 행동과학부에 들어가 근무하는 건 구미가 당겼지만 비서 업무에 한정된 일을 맡게 된 여성 요원이 결국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뻔했다. 퇴직하는 날까지 그런 일만 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기회가 주어졌으니 잘 선택하고 싶었다. (p.14)

 

“한니발 렉터는 아주 조심해서 다뤄야 해. 수감소장 칠턴 박사는 자네가 렉터를 상대하면서 취하게 될 실직적 절차 하나하나를 걸고넘어지려 할 거야. 그러니 정도를 벗어나지 마. 어떤 이유로든 한 치도 벗어나면 안 돼. 렉터가 자네에게 말을 건다면 그건 그가 자네에 대해 알아내려고 한다는 뜻이다. 뱀이 새 둥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호기심이지. 그자와 면담하면서 약간씩은 정보를 주고받겠지만 그자에게 자네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주지 마. 자네에 관한 개인적인 사실들을 그가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하게 해야 해. 그자가 윌 그레이엄 요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자네도 잘 알 거야.” (p.19)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야, 스탈링 수사관. 내가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든 거지. 나를 외부 조건에 이런저런 영향을 받은 존재로 평가 절하할 생각 마. 당신은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을 포기하고 행동주의자들의 학설을 따르기로 한 것 같군, 스탈링 수사관. 당신은 도덕적 존엄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이를 평가하지만,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도덕적 존엄성의 결여 때문만은 아니야. 날 봐, 스탈링 수사관. 나를 악하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악한가, 스탈링 수사관?” (p.46)

 

저장통에 든 건 턱 바로 밑에서 깔끔하게 잘린 머리였다. 보존액인 알코올 성분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희뿌옇게 된 두 눈이 스탈링을 마주 봤다. 입은 벌어졌고 거의 회색이 된 혀가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머리는 저장기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수년에 걸쳐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공기에 노출된 정수리 부분은 부패가 진행중이었다. 얼굴은 올빼미처럼 제 몸을 내려다보면서 동시에 스탈링을 멍하니 쳐다봤다. 손전등 불빛을 아무리 비춰봐도 저장기 속 머리통은 죽은 채 말이 없었다. (p.99)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기된 젊은 여성의 시선 여섯 구에서 검은마녀나방이 발견됐다. 이 연쇄 살인 사건에 투입된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볼티모어 주립 정신질환 범죄자 수감소로 향한다.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니발 렉터’의 감방. 자신의 환자 아홉 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인육을 먹은 그로테스크한 행동으로 수감된 그는 전직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스탈링은 그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연쇄 살인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가까워진다.

 

 

양들의 침묵?!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수없이 많이 들어봤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하지만 이렇게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왜?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내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영화가 개봉할 때는 내가 너무 어렸으니까. 뭐, 대충은 알고 있다. 한니발이라는 잔인한 살인마가 나온다는 것 정도? 진짜 무섭고 끔찍하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직 안 읽은 걸까. 사실 읽기 전부터 겁을 좀 먹었더랬다. 나란 여자, 무서운 걸 너무 싫어하니까. 근데 꼬박 다 읽어냈다. 누가 그랬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아니다, 이번에는 틀렸다. 십 수년이 지나서도 그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내가 바로 범죄 스릴러의 교과서다’ 하고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보인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렉터 박사와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스탈링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에 긴장감이 솟구쳐 오른다. 숨막히는 추리와 폭발적인 반전, 소름끼치는 차가운 문장들이 문학적 공포를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세월이 무어냐,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어찌나 흡입력이 좋던지, 정말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그야말로 시간순삭! 그 공포가 뇌리에서 박혀 떠나질 않는다. 혀를 내두를 정도! 마지막 장 638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쉴 틈이 없다. 지금부터 정주행,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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