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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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지금도 그는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쥐어뜯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고 싶어진다. 어째서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긴 것일까. 얼마나 무섭고 아프고 괴로웠을까. 사건의 참상에 평정을 잃고, 악마의 소행을 멈출 수 없었던 자신을 후회한다. 물론 그는 그 일에 아무 관련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몸 속 깊은 곳, 어딘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올랐다. 두 눈동자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아이 대신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의 눈구멍에는, 붉은 녹이 슨 계단 아래 더러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있던 딸기 캔디 한 알이, 그 뒤로 계속해서 저주처럼 박혀 있었다. (p.7)

 

저도 모르게 지른 자신의 비명에 놀라서, 히나코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네 평쯤 되는 일본식 방에는 남자가 드러누운 채 죽어 있었다. 크게 벌어진 눈은 허옇게 흐려져 부어오른 얼굴에서 튀어나올 듯 올라와 있었고, 몸의 구멍이라는 구멍 모두에서 검붉은 체액이 흘러나와 있었다. 입에는 뭔가 천 같은 것이 쑤셔 넣어져 있었다. 복장은 몹시 흐트러져서 상반신은 거의 벗은 상태에 알몸인 하반신은 피투성이였으며, 옆에는 피 묻은 커다란 술병과 커터 나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p.27)

 

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간 씨가 사진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히나코의 눈에서 둑이 터지듯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영정사진 속에서 밝게 웃는 사나에의 얼굴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미야하라가 저지른 너무나도 강렬한 악의에 마음이 흔들렸다. 눈물 때문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던 노비 선생, 아니 나카지마 다모쓰의 기분을 뒤늦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p.62)

 

“이게 오늘 밤 영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독방에 있다. 영상을 본 히나토의 인상은 딱 그것이었다. 식사 중이던 사메지마는 갑자기 국그릇을 떨어뜨리더니 누군가에게 가슴을 걷어차인 것처럼 바닥에 쓰러졌고, 벽 쪽으로 질질 끌려가서 얼굴을 벽에 부딪쳤다.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혼신의 힘을 다해 벽을 들이받는다. 마치 괴력을 지닌 뭔가가 사메지마의 팔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p.85)

 

 

 

갓 형사과에 입사하여 서류 정리 업무를 맡은 신참 형사 도도 히나코. 오후 8시를 넘길 무렵, 형사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히나코는 차 당번이라 자리를 떠나 있어 ‘간 씨’라고 불리는 베테랑 형사, 아쓰타 이와오가 수화기를 들었다. "미야하라 아키오...!" 히나코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의 데이터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미야하라 아키오, 1983년 6월 아키루노 시 출생. 스토커, 강제외설 혐의 등으로 세 번 검거된 경력 있음. 2006년 3월과 6월, 2007년 5월. 2009년 12월에는 부녀자 폭행 용의자로 체포되었지만 피해자가 신고를 취하해서 석방." 그는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장에 들어선 순간 폐에 달라붙는 듯한 악취가 났다. 곰팡내 같은, 분뇨 같은, 피 같은, 토사물 같은 견디기 힘든 냄새가 서서히 몸에 달라붙었다. 발견한 사체는 잔혹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목이 졸린 흔적과 크게 벌어진 눈, 온몸의 구멍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피, 속옷으로 막혀진 입. 그리고 그곳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병. 인간의 존엄 그 자체를 죽이려는 듯한 피도 눈물도 없는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광기 어린 시체. 놀랍게도 시체의 상태가 3년 전 미해결 사건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2010년 8월, 하치오지 니시 인터체인지 아래서 발견된 여자 고등학생의 교살 사체. 시신은 입 안이 속옷으로 막혀 있고, 그곳에 콜라병이 꽂혀 있었다. 감식을 끝낸 뒤 선배가 입을 열었다. "히나코, 이 녀석은 3년 전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어" 보복 살인이 의심되지만 단서는 죽은 남자가 스스로 죽어가는 스마트폰 동영상뿐. 도대체 누구의 짓일까?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사이 독방에 갇힌 연쇄 살인범이 스스로 머리를 박고 죽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역시 첫 번째 사건과 같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어갔다. 게다가 자살장면이 담긴 교도소 CCTV 영상마저 인터넷에 유포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죽어가는 범죄자들. 인터넷에 올라온 범죄자들의 자살장면이 담긴 동영상. 과연 그들의 죽음은 자살인가, 살인인가?!

 

 

저자의 데뷔작인 <온>은 일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면서 제21회 호러소설 대상 독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독특하고 매력적인 초보 형사 도도 히나코를 전면에 내세운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으며, 2014년에는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미해결 사건 파일 1, 2, 3!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초보 형사 도도 히나코는 비상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아 무엇이든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특별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한문 쓰기가 미숙해 경찰 수첩에 조사 내용을 O나 X, 스마트폰, 트럭, 병, 단추, 안경 등의 기호나 그림으로 그리지만, 그 그림을 슬쩍 보기만 하면 그 당시의 대화 내용이 머릿속에 동영상처럼 재생된다. 괴짜 중의 괴짜! 하나코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의 동료들도 하나같이 특이하다. 덴디한 스타일의 베테랑 형사 간 씨, 언제나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선배 형사 쇼지, 모태 솔로 오타쿠이자 감식반 에이스 미키, 산 사람보다 죽은 시체를 더 사랑하는 돌싱 검사관 사신여사까지 모두들 끼가 다분하다. 이러니 푹 빠져들 수밖에. 충격적인 살인사건에 긴장하여 몸이 움츠러들었다가, 사건 피해자의 이야기에 분노하였다가도 이들의 모습에 피시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흥미진진! 예측불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인간이 저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죽다니. 정말 살벌하게 무섭다. 그런데 계속 안 읽을 수가 없다는 거! 이 사건들은 과연 살인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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