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 오늘을 견디는 법과 파도를 넘는 법, 2019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김승주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 위에 오르면서 이 거대한 선박에 압도되었던 첫날을 기억한다. 먼 곳을 향해 떠나는 밤바다 위에 섰던 날의 마음은 복잡했다. 들뜨기도, 두렵기도 했으며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했다. 어느새 눈가를 적신 눈물의 의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라면 땅으로는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될 텐데. 육지를 완전히 벗어나 온통 물뿐인 대양 한가운데 선 나는 더는 약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삶의 터전이며 생존을 위한 격전지니까. (p.26)

 

‘나는 강해졌을까?’

‘나는 강해지고 있는 걸까?’

나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두려운 만큼, 외로운 만큼 잘 견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육지를 떠나 있으면 소중한 것에 대한 의미가 새로워진다. 사회적 배경, 재력, 남자, 스펙 따위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가장 그리운 건, 땅이다. 그리고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뿐이다. 당장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란 게. (p.43)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이 바다 위에서는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다. 바닷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 즉 육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눈앞에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수면이 전부다. 비교하자면 도로에 노란 선, 흰 선, 신호등, 표지판 없이 검은색 아스팔트만 있는 셈이다. 정답은 없다. 오른쪽으로 피하든 왼쪽으로 피하든 잠시 속도를 줄였다 가든 충돌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위험이 감지된 순간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 일단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면 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이내 다음 갈 길이 보인다. (p.49)

 

소중한 사람을 볼 수 없고 제한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배 타는 삶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지내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감사하다. 육지에서의 시간이 남들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일분일초 모두 헛되이 흘려보낼 수 없는 귀한 순간들.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게 되고 부지런해진다.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게 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p.111)

 

목표가 없어도, 꿈이 없어도 좋다. 그리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눈앞에 놓인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그때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배에서 석양이 지는 붉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배를 타고 있는 이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항해사로서 배를 타고 있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는 최선을 다했다. 만족한다. 그리고 계속 최선을 다할 것이다. (p.166)

 

 

이 책은 바다를 유영하는 스물일곱 항해사의 이야기다.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별반 다를 것 없는 각박한 현실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흔들리는, 아직은 인생에 서툰 항해사의 일상을 담았다. 현재 27,799톤 그러니까 3만 톤의 컨테이너선을 운항 중인 그녀는 장애물 하나 없는 바닷길을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일 년의 절반을 배에 갇힌 채 살아간다. 오로지 바다, 바다, 바다만을 바라보는 동안 외로움이 도둑처럼 몰려온다. 나는 왜 항해사가 되었을까 하는 끊이지 않는 질문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의 위압감까지. 땅과 바다, 서로 머무는 곳은 다를지라도 고뇌의 뿌리는 같았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물네 살의 나이에 바로 3만 톤의 배를 운항해야 한다는 압박감, 책임감과 마주했다. 그 무게 앞에서 두렵지만 맹렬히 맞섰다. 두렵지 않다면 도전이 아니니까. 아니 도망칠 수 없었기에 맹렬한 기세로 뛰어올랐다.

 

항해사?! 실상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흥미로웠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다 놓은 느낌? 읽으면 읽을수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 홀연히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바다의 세계. 육지도 아닌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 하나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한 순간 내린 선택이 자칫하면 목숨과도 직결되는 커다란 배 위에서, 선원 중 유일하게 혼자 여성이라는 상황속에서 저자는 삶을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응하며 다시 나아갈 길이 열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이런 저자의 삶은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있는 곳이 다를 뿐. 저자는 알고 있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자신만 믿으면 언젠가는 이 파도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시련에 지금은 미칠듯이 힘들고 괴로워도 나만의 속도로 묵묵히 버티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