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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평점 :





누구도 내게 생리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자연스레 여자애들에게만 ‘그 날’을 속삭였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생리대를 숨겨서 화장실에 들락거렸으며, 어쩌다 팬티와 침대에 피가 새기라도 하면 죄책감에 자신을 나무랐고,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남자 애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몰라도 왜”라고 말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그리고 나 자신과 생리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는 차단되었다. 그날 엄마가 나에게 그러했듯이. (p.19)
나는 초경이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경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면서 동시에 멋지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사실 여성만이 경험하는 월경은 아주 특별하다. 월경혈은 지구상 유일하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피이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매달마다 상기시키는 귀중한 손님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여자아이들의 초경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고 축복해주어야 한다. 여자아이가 초경을 시작할 때 주위 어른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인도하느냐에 따라 한 여성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p.31)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우리에게는 그날까지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나중으로 계속 미루기만 한다면 우리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다음 세대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생리에 관해 침묵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직군과 연령대의 더 많은 여성이 생리에 관해 목소리를 높일 때, 각각의 작은 모임에서부터 생리 터부는 점점 깨어질 것이고 그 작은 모임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언젠가 반드시 이 세계 전체로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변화의 핵심에는 언어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p.54)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만큼이나 우리의 월경 역시 다르다. 그리고 모두의 다양한 경험은 그대로 존중받아야만 한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생리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후천적으로 생리를 하지 않기로 택했다. 어떤 사람은 하는 듯 마는 듯 큰 변화 없이 생리 기간을 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 중간 즈음에서 각자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여성 개개인이 존중받고 지지받는 사회를 꿈꾼다. (p.142)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한다는 것, 내 몸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내 몸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내 몸의 주체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꾀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다. 오랜 세월 대상화되고 타자화되어 왔던 여성이 몸의 주체로서 바로 서는 일은 여성의 몸과 성을 향한 가부장적 억압을 무력화하는 근본적인 혁신이다. (p.265)
어릴 적 친구들과 워터파크에 놀러 갔을 때 처음으로 탐폰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 생리가 거의 끝나가는 5일차였기에 생리 양이 많지 않아 탐폰을 착용하면 충분히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여자의 몸에 구멍이 몇 개 있는지조차 잘 모를 때였다. 화장실에서 보이지 않는 밑을 무작정 쑤셔대며 구멍을 찾았지만, 탐폰이 들어갈 만한 구멍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인터넷에서는 다들 쉽게 하던데, 난 왜 이렇게 아프지? 한참을 화장실 안에서 쩔쩔매던 나는 결국 탐폰은 휴지통에 버리고 그냥 수영복만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별문제는 없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질에서 피가 흐르는 일은 없다. 수압 때문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 문제는 물에서 나왔을 때다. 더 이상 질에 물이 닿지 않게 되면 생리혈이 흐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탐폰을 착용하는 것인데, 생리 양이 많지 않은 끝물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엄마도, 여동생도, 친구들도 전부 별다른 의심이나 걱정 없이 당연하다는 듯 일회용 생리대를 썼다. 통풍이 안 되고 땀이 차서 습진이 생겨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가끔 질염에 걸리면서도 생리대 때문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양이 많은 날에 쓸 대형 생리대와 밤에 쓸 오버나이트, 중형 생리대와 팬티 라이너를 종류별로 구비해두느라 몇 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출하면서도, 여자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리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때였다. 생리대의 부작용이 보도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2년 전까지는.
내 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내 몸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 나는 생리 일기를 쓰며 처음으로 내 몸과 더듬더듬 대화를 시작했다. 생리를 시작하고 지옥의 PMS(월경 전 증후군)에 익숙해져버린 한 여성이 생리를 제대로 바라보며 쓴 생리 일기 <네, 저 생리하는데요?>. 이건 단순히 생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껏 여성들이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경험"이라고 여기고 "침묵해왔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여자아이들은 성장 과정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스러움을 교육받으며 정체성이 형성된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풍만한 불륨을 자랑하는 드레스를 입은 디즈니 만화 속 주인공, 가족이 모두 모인 명절에 집안일을 독차지하는 여자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여성성이란 이런 것이라며 주입받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인이 되면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는 행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무의식이 이만큼이나 무섭다. 메이크업 같은 경우에도 여성의 의무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분위기에서 노메이크업을 선택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머리를 기르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다이어트를 통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도 여성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마치 이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인 것 마냥 이들을 향한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해?! 에프엑스 출신의 아이돌 설리는 노브라 사진을 자신의 SNS에 노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두고 ‘개인의 자유다’라며 옹호하는 입장도 있고 반대로 ‘보기 불편하다’, ‘민망하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설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속옷은 개인의 자유다'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써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그녀는 정말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니 오히려 반문했다. 왜 그래야 하는 거냐고 의아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멋있어보였다. 다수가 Yes라고 외치는 곳에서 혼자서만 No라고 외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를 두고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이제껏 쭉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젠 변해야 한다. 스스로를 속박하는 세상의 관습과 규범에서 벗어난 빠르고 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미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까.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들이 무엇보다 귀중했다. 남녀 구별 없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 또한 나니까. Love your 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