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김유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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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취미를 찾는 게 쉽지가 않았다. 취미는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고, 즐기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노트에 적힌 리스트를 보니 내가 좋아해서 하고 싶다기보다는 남들이 하는, 혹은 친구들과 같이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질문을 바꿔 다시 생각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어떤 사정이나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질문이 확실하니 답이 재빠르게 나왔다. 나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p.23)

 

 

나도 헤세가 그랬던 것처럼 수채화를 그리면서 마음의 깊이가 생기고 인생을 관망하는 자세를 터득했다. 헤세는 관망하는 것은 탁월한 기술이라 표현했다. 관망의 기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얻어지는 것이고 치유력이 있는 것이라 했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집에서 빈둥대며 보내는 주말 오후의 시간이 풍요롭게 채워졌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과 인생을 관망하는 것이야말로 수채화를 통해 얻게 된 유희였다. (p.108)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얻으면 된다. 나에게 그림의 목표는 공모전 입선이라거나 유명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이제는 취미로 시작한 실력 치고는 그림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감히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과 비교하고 있으니 문제인 거다. 이제 나는 일과를 마친 후나 여행을 하면서 본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p.165)

 

 

취미나 놀이를 하는 어른들은 늙지 않는다. 대화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확실히 다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가장 자신 있는 시절의 모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생의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대단한 일이 있을 것 같았던 미래는,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다. 덕분에 삶의 끝자락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나이 먹음에 무색하지 않게, 삶이 주는 크고 작은 파도 안에서 헤엄치는 법은 배워둔 듯하다. 니나처럼, 때로는 니나의 언니처럼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 그리듯 삶을 가꿀 줄은 알게 되었다. (p.191)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에서 전시회에 초대받는 정식 화가가 되기까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꿈에 그려봤던, 그런 이야기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이 예술이라 믿으며 그것을 매일 조금씩 그림으로 그려 나가는 사람, 그리고 매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속 수많은 인파와 함께 출퇴근길을 걷는 보통의 10년 차 직장인이 바로 이 책의 저자다. 그녀는 퇴근 후 그림을 배우러 간다. 그림?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그림을 배운다고 알리지 않았다. 딱히 묻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스스로 이렇게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작은 보통의 취미와 다를 게 없었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영어 공부에 꽂혀서 온라인 강의를 신청하듯 그림 그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일주일만 의욕을 불태웠던 운동이나 공부와는 달리,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출석률이 높아졌다. 살이 빠진다거나 쓸모 있는 기술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재등록을 반복했다. 그림은 적당히 즐거웠다. 소소한 기쁨과 확실한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잠시 현실을 망각하게 했다. 선과 색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그림은 살면서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나다움’의 발견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내 시간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오롯이 섰다.

 

이 책은 소심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퇴근 후에 그림을 배우면서 발견한 인생의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소박하게 기록한 에세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현재 살고 있는 삶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신만의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고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내는 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채롭게 담아낸다. 연필 소묘에서 수채화로, 수채화에서 유화로 재료와 소재를 바꾸어 나가며 변화되는 그녀의 모습은 은근히 우리들의 마음을 부추긴다. “여러분도 이런 취미 하나쯤 만들어 두면 어떨까요?” 저자는 말한다. 일상의 틈새 속에서 나를 발견하니 멀리 떠나도 달라지지 않던 인생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아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시간,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그날의 표정, 잠들기 전 연인과 굿나잇 키스를 한 뒤 책을 펼치는 모습···. 새로운 취미의 발견은 힘든 하루의 소소한 위로가 되었다. 대단한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을 넓게 하고 또 다른 꿈을 꾸게 했다. “한 걸음 물러나 보면 모든 일상은 예술이었다.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당신의 일상을 응원한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꽤 낭만적인 예술가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저자와 같은 취미가 있다. 옆에 찰거머리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준 책! 바로 독서! 요즘 내게 책만큼 좋은 게 없다. 울고 웃고 배우며 알아가는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그 내용을 잊어가겠지만 그때 또다시 읽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그런 감정들이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심신 건강을 위해 이런 취미 하나쯤 만들어 두면 좋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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