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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 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선형 옮김 / 샘터사 / 2019년 7월
평점 :





호불호와는 별개로 마음에 맞는 장소가 있다. 그러한 장소에 방문해서야 호불호와 마음에 맞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감각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친구와의 관계나 연인 관계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마음에 맞다’라는 것은 아마도 자신만 아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대와 있으면 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즐겁다. 그런 심리적인 기분 좋음이 신체에서도 느껴진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장소에 있으면 편한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이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 그 점을 무엇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p.43)
인생이란 시간에서 내려다보면 그 사람들과도 아주 짧은 순간 같은 버스에 탄 것일 뿐이다. 인생의 여정은 프놈펜에서 시아누크빌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며 몇 번이고 환승이 필요하다. 종종 버스는 엔진이 고장 나고, 길을 잃고, 우주인의 기습 공격을 받는다. 그저 승객에 지나지 않는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힘을 합쳐 헤쳐나가고자하며 생각지 못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의 환승 지점이 오면 모두에게 손을 흔들고 이별한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p.58)
나는 항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시장을 먼저 찾게 되는 것 같다. 그 나라의 물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 마을의 개성을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활발한 기운이 드는 마을에서는 시장도 밝은 기운이 느껴지고, 고요한 마을에서는 시장도 활기차기보다 차분하다. 그리고 시장에 가면 그곳에서 살아보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서 소개한 잎채소와 라비올리는 여행객인 나로서는 좋다는 생각만 할 뿐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살아본다면 사서 집으로 돌아가 요리를 해 먹는, 한순간의 꿈과 같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p.121)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인 나조차도 이 도시가 얼마나 살기 편한 곳인지 알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한 주택가가 나에게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바로 그 평범함이 이 도시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알게 되었다. 도시의 일상이 여행자에게 있어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자신이 그곳에 속해있지 않다는 사실을, 며칠 동안이지만 내 생활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사람이 사는 도시 하나하나가 그걸 실감하게 했다. (p.139)
여행에세이? 아니다. 이 책은 보통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그녀는 멋진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여행이 주는 낭만이나 매력 혹은 여행 중의 우여곡절을 내세운 모험담을 늘어놓는 데 관심이 없다. 오직 여행의 모든 행간,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우연의 순간들을 통해 인연의 의미를 반추하고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그녀에게 여행이라 함은 타국의 버스 안에서 만난 이들과 보낸 몇 시간을 통해 인생 곳곳에 놓인 환승장에서 타고 내린 인연의 순간들을 떠올리거나, 평범한 도시의 일상에서 느낀 뜻밖의 외로움을 통해 사람이 몸을 붙여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실감하는 일이다. 저자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통해 일상의 흩어진 조각을 맞춰 인생의 의미를 그려낸다. 낯선 길에 동행하는 크고 작은 삶의 의미, 소중한 인연의 순간, 우리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과제들. 이 모든 것을 여행길에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만나게 될 것임을.
저자가 30년 가까이 여행을 하며 조금은 알게 된 점이라면 ‘여행의 참된 즐거움’은 세계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미지가 아니게 되거나 평행우주가 되어도, 심지어 세련되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박 2일이든 1주일이든 일단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대부분 발견할 수 있다. 그녀에게 있어 여행의 참된 즐거움은,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었을 사람과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함께 웃을 수 있고, 대화를 나누며 미소나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서로 교감하는데 있다. 그런 소소함이 여행의 참맛과 참된 즐거움을 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4세 때 했던 여행에서 발견한 보물이 변하지 않고, 여행할 때마다 여전히 그대로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보물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같은 울림으로 앞으로의 여행에도 계속 함께할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선 길에서 헤매길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짧고 긴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다는 기분 좋은 사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