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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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통기한 삼십 년짜리 딸을 왜 낳았을까. 귀한 딸래미한테 쭈그렁이니 똥값이니 하는 험한 말을 하고 싶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나를 보내버리려고 그렇게 애써 키웠을까. 서른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을 갑자기 데려오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결혼은 곧 행복이라는 이상한 공식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서둘러 결혼했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누구 탓을 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당신의 인생 과업을 이루기 위한 희생양일 뿐일까. 아빠가 밉다.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닐 것을 알면서도 마냥 밉다. 아줌마 같은 얼굴을 하고서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 내가 더 밉다. 싫다. (p.19)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생 잠깐이라고. 없는 놈 만나 고생하지 말고 있는 놈 만나 편히 살라고.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장동건도 똥 싸고 방귀 뀐다고. 아무리 잘생긴 얼굴도 삼 개월만 보면 질리는 거라고. 그러니 다른 거 말고 돈을 보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거들어 이렇게 덧붙이셨다. 느이 아빠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가난한 것만큼 서러운 일 또 없다고. 엄마는 우리 딸 잘 먹고 잘 사는 게 소원이라고. 세상에 다 갖춘 남자는 없다고. 그러니 다른 거 말고 돈을 보라고 말이다. 아빠와 엄마가 쌍으로 돈타령 할 때마다 겉으로는 “예,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속으로는 ‘나는 그런 속물이 아니야!’ 하고 코웃음을 쳤다. (p.37)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다. 아빠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 역시 좋아할 수는 없다. 아빠는 팍 꼬부라진 신김치가 맛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삭아삭한 겉절이가 맛있다. 아빠는 푸른 숲을 거닐러 산에 가지만, 나는 빌딩 숲을 거닐러 광화문에 간다. 아빠는 남자라면 최불암처럼 중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남자라면 조인성처럼 훤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빠가 원하는 대로 최불암 닮은 남자와 신김치를 먹으며 산속에서 산다면 나는 너무 슬퍼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을 살며 불행을 느낀다면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꼴이 되어버리니, 그것은 필경 불효가 아니겠는가. (p.75)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든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된다, 는 결론을 내리고야 만다. 밥 차려줘야 할 남편 있는 거 아니니까. 기저귀 갈아줘야 할 자식 있는 거 아니니까. 하루에 한 번씩 안부 전화 드려야 할 시부모 있는 거 아니니까. 만나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남자 있는 거 아니니까. 남들이 시간을 쪼개어가며 이 모든 일을 해내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까. 남아도는 시간에 그깟 인터넷 쇼핑 좀 하면 어때. 아무리 해도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는 걸 무어. (p.293)

 

이 책은 저자가 2017년 1월~2018년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와 <가자, 달달술집으로>를 재구성하여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정말이지 너무나 손쉽게 읽혀진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앞뒤 잴 것도 없이 시원시원하다. 진짜 친구의 이야기를 그대로 책 속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어디다 말할 때도 없어 가슴에 꼭꼭 담아둔 마음들을 풀어놓고 공감하며 위로받는 날이다. 제 또래는 이미 다 갔는데 나이를 채우고도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자식들을 보며 부모는 억장이 무너진다고들 한다. 그걸 바라보는 자식들은 어떨까.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서로에게 심통이 피어오른다.

 

 

시집 안 간 딸에게 엄마는 허구한 날 뭣하고 다니느냐 시시콜콜 따지고 들고 아빠는 괜찮은 남자 만나 하루속히 시집을 가라며 아우성이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작 혼자라고, 시집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에선 골칫덩어리, 사회에선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아니 왜?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원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한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식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다. 부모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자식이 무조건 해내야 하는 의무는 없다. 그저 나는 나대로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앞다투어 듣는 말이다 보니 눈치가 재빨라 질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화낼 일도 참아야 하고 도도해야 할 때 겸손해 보이려 애쓰고 신경질을 보여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앞으로 견뎌야 할 세월은 많디많고 딱히 이렇다고 할 이도 없고 마음도 없고 이를 두고 고민이 깊어져 간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고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저자는 말한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밝혀도 괜찮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나는 정말 잘살고 있으니까.” 각자의 인생은 각자 알아서 합니다. 그러니 이제 신경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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