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 - “내 새끼지만 내 맘대로 안 된다!”
서민수 지음 / SISO / 2019년 5월
평점 :





중·고등학생 중에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의 ‘서먹함’과 ‘불편함’ 때문이다. 중학교 때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왕따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절대 왕따를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 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대한민국 모든 자녀는, 특히 여학생은 언제라도 왕따 피해를 당할 수 있고, 또 왕따를 시킬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 여학생의 등교 거부 이유는 ‘학교에 가면 서먹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쪽으로 좁혀진다. 이유가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여학생을 서먹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당사자인 여학생이 나와 직접적인 면담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비로소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p.42)
대부분의 부모님은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현재 시점에서 아이의 잘못만 보고 애를 태운다. 결국 학생의 인성을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역할이 가장 크다.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건 안타깝지만 부모의 역할이 만들어낸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아이들의 행동은 언제나 변화를 거쳐서 형성되는 것이지 한 번에 쓰레기가 되는 친구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의 변화에는 단계가 있고, 앞 단계에서 잘못된 점을 놓쳤다면 다음 단계에서라도 꼭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고치는 과정에도 잘못된 단계만큼의 계단이 있다. 결국 버티고 기다리는 시간을 얼마나 감당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자식이니까 못할 건 없지 않은가? (p.56)
자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는 자녀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일단 말허리를 자르고 부모가 대화를 리드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먼저 걱정이 앞서니까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로 그러한 대화는 취조하는 듯이 자녀를 추궁하고 들볶게 되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든다. (p.92)
우리는 자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거의 모든 부모가 부모로서 자녀의 교육에는 온갖 관심을 두고 열성을 다해 투자하는 반면 정작 자녀의 심리적·육체적 안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 자신이 별 탈 없이 성장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자녀들도 그럴 것이라 가정한다. 부모들이 겪은 청소년기가 훨씬 보호받지 못했고 혼자의 힘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매복해있고, 사회는 청소년을 노리는 비열한 속임수가 난무하고 있다. 또한 안전을 위협하는 범위는 더욱 넓어졌고, 관용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아이들이 부모가 청소년기였던 때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자녀의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아이가 따라줄지 몰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 한다. 왜냐면 우리는 부모이니까.
10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무조건 알아야 할 요즘 애들의 속사정! 공감률 1000%! 꼭꼭꼭 읽어야 보시길! ‘내가 참 모르는 게 많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고 깨닫는 바가 상당히 크다. 아들도 그렇고 나도 지금 서로에게 주어진 역할이 처음이니까. 품안의 자식이라고 어렸을 때는 내 품안에서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더해질수록 서로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생각하는 것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보니 아무래도 서로에게 다가서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내가 한 발자국 다가서면 아이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고 아이가 다가오려하면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되고, 가까운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아직 내 눈에는 마냥 어리기만한데 자신은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 자식이지만 참 내 맘대로 안 된다. 그저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었으면 싶어서 그러는건데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어째 내 자식의 안전을 위해 내가 배우고 또 배워야지. 부모라서 그런가? 정말 모든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내 마음에 와닿는다. 한편으론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저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난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아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 이건 아마 평생 내게 주어지는 숙제일테지.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려운데 부모는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