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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나는 하나도 안 좋을 것 같지만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p.23)
엄마는 아빠 얘기는 물론이고 자신의 옛날이야기도 전혀 해주지 않는다. 마치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마리에는 자기 엄마가 툭하면 엄마가 어렸을 때는 이랬다느니, 엄마의 학창 시절에는 이랬다느니 옛날이야기를 끌고 와서 비교하니까 짜증이 난다고 했다. “어른들은 왜 옛날이야기를 좋아할까?”라고 궁금해했다. 유카는 오늘 이번 일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고 했다. 엄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그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한 번도 성묘하러 간 적이 없다. 사실은 아빠 이야기 뿐만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도 선생님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진실을 전부 아는 것이 꼭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알아버리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니까요.” (p.66)
뒤를 돌아보니 엄마와 가자마 씨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을 흔들자 두 사람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왠지 평범한 가족 같았다. 지금까지 계속 부족했던 것, 찾아 헤맸던 퍼즐 조각을 드디어 맞춘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족 단위로 온 것 같았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다. 지금껏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싶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남들과 같아졌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럴때 반 친구 중 누가 봐주면 좋겠는데. (p.116)
“자식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만 행복해지려는 부모는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겐토가 말했다.
“네 엄마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건 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엄마의 행복을 위해 네가 사라진다는 생각은 잘못됐어. 네가 없으면 엄마는 행복해지기는커녕 이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해질 테니까.”
눈이 촉촉해졌다. 눈물이 넘쳤다. (p.139)
책에는 다른 가족 없이 엄마와 단둘이 지내는 초등학교 6학년 소녀 다나카 하나미의 이야기가 5개의 단편으로 실려있다. 네 편은 딸인 하나미의 입장에서 나머지 하나는 하나미와 같은 반인 신야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꽃도 있고 열매도 있는 명과 실을 겸비한 인생을 살라는 바람을 담아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 하나미. 다나카 하나미는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의 빈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다. 엄마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하나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고만 한다. 어려서는 그 말을 믿었는데 요즘 들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아빠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중 감이 왔다. 아빠는 범죄자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워낙에 아빠에 대해 얘기하기 싫어하니까 폭력을 쓰거나 술주정뱅이거나 도박을 좋아하는 그런 구제 불능인 인간이라 짐작했는데 범죄자였다니. 엄마가 꾸며낸 어색하기 짝이 없이 밝은 태도가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미는 아빠가 범죄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경찰서의 게시판에서 전국 지명 수배범들의 얼굴 사진을 살피고 엄마의 장래를 위해 아동보소호 시설에 들어갈 방법이 없는지 고민한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이런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나미의 엄마 다나카 마치코는 공사 현장에서 남자들과 어울려 힘쓰는 일을 한다. 거기서 여자는 엄마뿐이다. 볕에 탄 머리카락은 퍼석퍼석하고 잘 먹는데도 말랐다. 좀 더 편한 일도 있을 텐데 엄마는 자기를 괴롭히듯이 일한다. 엄마는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다. 다른 가족도 없어서 하나미는 친척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빠에 관해서 누구에게도 물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엄마와 그녀 오직 둘뿐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것을 엄마는 몸소 일깨워 준다. 어린 하나미를 지키며 홀로 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예정. 하지만 이제는 좀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애틋하다. 이들 모녀는 돈이 없어도 늘 마음에 여유를 한가득 품고 다니며 그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침울해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 부시게 빛이 난다. 이들 모녀 이제는 좀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품은 작가의 나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가는 오직 글로써 독자들과 소통한다. 얼마만큼 독자들을 만족시키느냐가 관건! 나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저자에게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이제 고작 열일곱. 어리지만 작가의 이력은 상당히 화려하다. 2003년에 태어나 2019년 현재 만 열다섯 살이고 일본의 출판사 쇼가 쿠칸에서 개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사상 최초로 4학년, 5학년, 6학년 때 3년 연속 수상했고 만 열네 살에 이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그녀가 반나절 만에 쓴 열 한장의 자필 원고에서 시작된 소설로 앞서 얘기했듯이 그녀가 열네 살에 출간한 첫 소설집이며 일본에서 출간 직후 10만 부 이상 판매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일찍부터 재능이 활짝 꽃피었다. 천재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야기꾼의 기질을 타고났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정말 대단한 작가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