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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나는 아부지를 가족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부지가 내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 아부지는 언제나 썬더버드 5호처럼 우주의 어딘가에,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머나먼 어딘가에 둥실둥실 떠있는 듯한 존재였다. 무슨 겨를엔가 훌쩍 돌아오기도 하지만, 또 문득 돌아보면 사라지고 없었다. 무엇을 하는지 잘은 모르더라도 ‘있다’라는 사실에 어딘가 안심이 되는 존재로서 내 마음속에 항상 있었다. 그리고 엄니는 언제나 썬더버드 2호처럼 콘테이너에 실은 나를 동체에 집어넣고, 지나치게 가까울 만큼 바로 곁에 있었다. 잠시라도 어디로 없어지면 울면서 나는 그 행방을 찾았고 그 울음이 그치기 전에 곧바로 돌아와 주었다. 서로 함께 붙어있는 것으로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거나 같았다. 아무튼 ‘있다’라는 것으로 나를 안심시켜주는 존재였다. (p.39)
인간이 태어나 맨 처음 알게 되는 부모자식이라는 인간관계.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나지만, 결국 태어나서 처음 알았던 것, 처음부터 그곳에 당연한 일처럼 있었던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고도 강력하고 결코 뒤집히는 일이 없는 관계였다고, 마음에 가시를 찔려본 후에야 가까스로 깨닫는다.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랑이 있으나 부모가 아이를 귀애하는 것 이상의 사랑은 없다. 사랑을 원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주는 입장이 되어 보고서야 겨우 조금씩 깨달아간다. 예전에 부모가 내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가. 그날의 일을 깨닫고, 지금에야 나 자신이 그것과 똑같이 되려고 마음먹는다. 그때서야, 인간은 확실한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인지도 모른다. (p.148)
그 무렵에 우리가 보았던 것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먹고살기조차 힘겨운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장래나 미래에 불안을 느끼거나 침울해졌던 일은 없었다. 그보다 우선 당장 눈앞의 일에 허덕거렸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분명 앞으로는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 무엇 하나 확실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었지만, 하루하루를 따분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무언가를 손에 넣은 사람에게나 두려움과 따분함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p.246)
이 세계와 나 자신, 그 애매한 간격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한없이 느릿느릿 이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광대처럼 진한 화장을 한 검은 옷의 저승사자가 무표정하게 나타나 어딘가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 순간부터 시간은 발소리를 내며 마라톤 주자처럼 달려간다. 그때까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에 마음을 기울이며 천천히 지나갔던 시간은 문득 역회전을 시작한다. 지금에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다. 종말로부터 지금을 향해 시간을 새기며 저벅저벅 다가온다. 나 자신의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 거기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올라오는 인생의 카운트다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현실을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다. 그런 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태어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는 이상, 나 자신의 손목시계만으로는 운명이 허락해 주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p.290)
시어머니와 시누이, 네 명의 하숙생과 천방지축 남편. 노동력에서나 정신력에서나 몹시도 힘겨운 처지의 신부였던 어머니는 ‘나’가 네 살이 될 무렵에 그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쿠라 외곽으로 시집 간 아버지의 누님인 시누이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아버지와 별거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관계는 복구되지 못했고 결국 어머니는 1년 뒤에 어린 자식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후쿠오카의 시골, 폐광이 머지않은 치쿠호의 탄광촌(친정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따스한 친척들과 정다운 이웃들에 둘러싸여 가난하지만 유쾌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는 정착하지 못하는 그 특유의 기질 탓인지 때때로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늘 자신을 보듬어 안아주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는 구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도쿄로 떠나간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본 적도 없는 것들. 들은 적도 없는 음악. 맡은 적도 없는 향기. 느낀 적이 없었던 열등감. 매일 뭔가 긴장해서 손에 닿는 대로 열중했다가 녹초가 된 채로 하루가 지나갔다. 어머니에게서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무엇을 열심히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나는 결국 처음 꾸었던 꿈에는 가까이 다가가 보지도 못하고 빈둥거리다 졸업도 하지 못하고 빚만 쌓여갔다. 그 모습은 지독히도 닮고 싶지 않았던 책임감 없던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돈이 없어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집세가 밀려 이곳저곳을 전진하던 나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암 투병 소식을 듣게 되고 그 일로 인해 나의 삶은 조금씩 변해간다.
입소문을 타고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일본의 국민소설 <도쿄타워>. 이 책은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그 화제성이 뛰어나다. 저자는 정성을 다해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와 인생의 굽이굽이 골목길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아버지, 이 가족의 가슴 뭉클한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그저 한낱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엔 내용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눈으로 가슴으로 콕콕 그 감정들이 스며든다. 정말 내 인생을 통틀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소설. 어머니의 희생과 소중함 앞에서 목이 메이도록 눈물이 넘쳐 흐른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볼 수 있을 때 잘해드려야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내 혈육이 죽는다. 어머니가 병에 걸린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당연하고도 흔한 일일 테지만, 실제로 그 현실에 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실감하지 못한다. 언제나 늘 우리들의 곁에 있을 것 같지만 언제 어디서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 우리는 그걸 늘 잊어버린다.
가족애? 모성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은 끝이 없다. 자식이 아프기라도 하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단숨에 달려온다. 자식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부모는 항상 자식편. 부모란 이렇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를 염원하고 죽어 떠난 뒤에는 자식을 수호하기를 기원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직 자식 걱정뿐. 특히나 어머니는 자신의 삶보다도 자식의 삶과 행복을 더 사랑한다. 여자로서의 미래는 없다. 오직 어머니로써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간다. 자신의 인생이지만 그 속에 자신의 인생은 없다. 자식에게 자신의 인생을 뚝 잘라 나눠주었기 때문에. 가슴이 아려온다. 정말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여운이 남아있다. 정말 띠지에 적힌대로 이 책을 전철에서 읽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