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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4월
평점 :






말보다는 몸으로 부르짖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에 동요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 본래 인간이란 언어와 상관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던가. 진화를 거듭해 언어가 생기고 말이 유통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지만, 태초의 사람은 말과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부터였을까? 녀석의 모습이 보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원초적인 사람다움이 내 눈에 밟혔다. 나는 이제 적당히 나이가 들었기에 녀석처럼 온몸으로 내지르는 보기 좋은 본능을 다시 갖기 어렵다. 그 밑도 끝도 없는 모습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녀석이 가진 순수함이 무척 멋지다고 감탄하게 된다. (p.20)
시하를 키우면서 아빠로서 잘못된 나의 행동이 원지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무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와 나와 원지가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인 존재라는 걸 꼭 이렇게 저질러버리고 나서야 확인한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 된다는 건, 결혼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고 국가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다른 구성원들의 상태를 먼저 헤아려줄 수 있는가, 나의 상태를 맨 마지막으로 놓아둘 수 있는가······. 이것도 그나마 최소한의 조건이다. (p.31)
‘친구 같은 아빠가 가능한가?’
부모는 아이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쏟아내도 상처받지 않고 안아줄 수 있다. 내 아이와 친구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부모는 없다. 아이와 부모는 이미 친구다. 난 아주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친구, 시하와 오늘도 우정을 나누고 있다. 어쩌면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라 ‘진짜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드는 건 덤이다. (p.44)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감정의 끝에 가까운 경험을 했다. 워낙 허망하게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그동안 갖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짐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해지면 내 마음의 짐은 결국 가라앉아서 영영 뜨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고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이때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정해진 감정의 크기는 결국 본인이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더라도 결국은 본인이 감내하게 된다는 것을. (p.69)
봉태규? 직업은 연예인. 주로 연기를 하지만 글도 쓰고 팟캐스트도 진행했다. 신비주의는 아니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10년 가까이 연예 활동이 뜸했다. 요리 하기를 좋아하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것을 아주 즐긴다. 할 말 많고 사연 많은, 그냥 그런 사람. 그런 그가 에세이를 출간했다. 다름 아닌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하여! 결혼을 하고 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과연 내가 좋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이자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봉태규 또한 그랬다. 결혼은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반드시 아버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시 감정과 마음은 오직 그녀 한 사람만으로도 용량이 초과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다 임식 소식을 듣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였다. 아이를 안으려면 팔뚝이 두꺼워야겠다 싶어 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지금보다 중후한 목소리를 내야 아이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목소리 톤을 연습하기도 했는데 애석하게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책도 엄청나게 찾아서 읽었다. 그러면서 아이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신뢰하며 아껴준다는 자세를 배웠고 그러는 사이 시하가 태어나고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이 책에 연예인 봉태규는 없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시하와 본비, 이 두 아이의 아버지 봉태규만이 존재한다. 아이를 낳아보면 알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는 선택의 연속이다. 예방 접종을 위해 어떤 주사를 맞춰야 할지, 옷은 어떤 걸 사야 할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이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일들이지만 아이의 부모로써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 자식이니까. 이건 부모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보이지 않는 족쇄. 부모라는 이름에 더해지는 책임과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부모가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부모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육아 방식을 되돌아보고 참된 부모에 대해 고민한다. 사람이기에 분명 실수는 한다. 다만 그것을 수정해나가느냐 아니느냐로 판가름이 나겠지. 분명한 것은 부모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모두가 편안해진다는 것, 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하면 그때부터 아이는 불안해하고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부모의 역할은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앞으로 부모가 될 예정이거나 초보 부모들이 본다면 폭풍 공감할 내용이 상당히 많다. 부모가 되면서 겪는 일이라던가 참된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비슷해 위안과 위로 그리고 깨달음을 동시에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