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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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자살이 최고의 처방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기역 자’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만으로 팔만대장경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도 쉽지는 않았다. (p.13)

 

그들이 세상에 원하는 건 단 한 가지였다. 회복될 가망이 없는 몸의 병처럼, 회복될 가망이 없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빼앗지 말라. 실제로 그랬다. 당시만해도 자살은커녕 ‘죽음’을 논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받으면서 안락사는커녕 존엄사 조차 택할 수 없는 시절도 존재했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존엄사를 ‘살인’ 혹은 ‘자살’이라 부르며 매일 죽음보다 더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굵은 관을 찔러 넣는 형벌까지 얹어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의 정도’가 아니었다. 똑같이 온몸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원했고, 누군가는 죽음을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였다. (p.21)

 

“왜 힘들어서 떠나는 걸 죄로 몰아서 더 힘들게 하지? 야, 이서우. 그렇게 바짝 쫄고 그러지 마. 우울증은 죄가 아냐. 아무 잘못 없어. 우리가 뭐, 사람을 죽였어? 아님, 사기를 쳤어? 아니잖아. 그냥 우린 마음이 아픈 것뿐이야. 마음 아픈 것도 몸 아픈 거랑 똑같아.”

그 말을 듣자 괜히 기합이 들어 나는 등을 쭉 펴고 바르게 섰다. 죄가 아니다. 아무 잘못 없다. 그저 마음이 아픈 것뿐이다. 김태한이 한 말들을 되짚을 때마다 척추를 받치고 있는 근육이 조금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p.103)

 

센터장이 양지를 안았다. 한 여사님을 안았다. 손형을 끌어안았다. 작가 선생을 끌어안았고, 다음으로 김태한을 끌어안았고, 그리고, 마침내 내 앞에 섰다. 나는 눈을 꾹 감고 숨을 크게 참았다. 낯선 냄새와 낯선 타인의 품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1초, 2초, 3초······.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졌을 시간이 흘러가고 센터장의 품에서 벗어났을 때, 안에서 뭔가 쑥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아니 뭔가 꽉 채워진 기분이었다. 아니,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는 어떤 기분.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감정의 핵을 쿡 찌른 기분. 저 안에서부터 뭔가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 센터장의 뒤를 이어 포옹의 파도를 몰고 오는 사람들 품에 차례로 안겼다. (p.151)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삼키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연수가 어떤 마음으로 버텨왔을지 알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약을 삼키던 날 내 마음이 어땠는지 이제 알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사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죽는 것도 두려웠다. 단순히 죽는 것만 두려운 건 아니었다. 세상과 끝이라는 사실 역시 무서웠다. 하루도, 숨도, 생각도 모두 끝나버린다는 게 뭔지, 끝의 다음을 알 수 없어 겁이 났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그건 희망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끈 같은 거였다. 자궁 안에서 모체와 태아가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날 때부터 생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그 무엇. 배신당하고 또 배신당해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어떤 것. 놓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것. (p.342)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어 각 지역마다 센터가 운영되기 시작하는 등 안락사가 합법화되자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혀 우울을 견디며 살아온 서우는 센터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미성년자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센터에 입소하기 위해서 본인의 결정 외에 다른 누구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필요했다. 그것도 제법 큰 돈이. 오래전에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이후로 현관문을 열어본 적 없는 그에게 큰돈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당장 재택근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노동이 전부였고, 일이 단순한 만큼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 또한 단순했다. 그러는 동안 센터가 문을 열었고 첫 번째 입소자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센터에 들어갔다. 초조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전부 마련하려면 3년도 넘게 걸릴 거였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센터가 없던 시절에야 죽지 못해 살았다지만 이제는 애기가 달랐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우는 결국 엄마를 설득해 안락사를 진행시켜주는 센터에 입소한다. 특별위원회에서 그에게 내린 처방은 한 달. 그 기간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서우는 언제든지 약을 받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서우는 죽기 위해 들어간 센터에서 태한을 비롯한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나눠 먹고, 각자의 아픈 상처를 나누면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사랑이 삶에서 얼마나 큰 영역을 차지하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인정한 시대. 책은 안락사라는 소재를 통해 진정 안락한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마음의 병으로 삶이 회복 불가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는 죽음이 아닌, 보다 나은 삶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회복 불가능한 마음의 질병으로 오랜 시간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고통받아야 마땅한가.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평온할 수는 없는가. 이것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고 계획해 온 결과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일부로 수용하려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밝게만 보이는 ‘양지’는 숨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반려견 또또의 모습을 목격하며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공포를 경험한다. 그 뒤로 죽음이 무서워 더 이상 사람의 눈을 바라볼 수도,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한 여사’는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어떤 향수로도 가릴 수 없는 늙음의 체취를 마주하자,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손 형’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다. 결국 그의 가족은 깨졌고 그렇게 그는 남은 것 하나 없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자 한다. 그 외에도 평생 외톨이였던 민아와 사랑하는 이의 배신으로 꿈마저 잃어버린 연우까지. 삶은 때때로 죽음보다 더한 아픔을 준다. 그 아픔은 삶의 작은 균열에서부터 서서히 다가올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건처럼 내 앞에 놓이기도 한다. 안락사가 가능하다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은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삶과 고통, 그리고 죽음. 분명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란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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