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방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 온전한 아이로 키우는 아미시 육아의 지혜
세레나 밀러.폴 스터츠먼 지음, 강경이 옮김 / 판미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아미시 문화는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문화다. 아기들은 아미시 문화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필요가 언제든 충족되고 언제든 곁에 돌봐 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안정감을 느낀다. 바바라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아미시 아이들이 그토록 삶에 만족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공동체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시들이 아이 키우는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나는 아미시 육아가 ‘육아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아미시 육아는 아미시들이 마음 깊이 간직한 많은 믿음의 결정체다. 아미시들이 지닌 믿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미시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가족이 있다는 믿음이다. (p.43)

 

끊임없이 요동치는 듯 보이는 요즘 세상에서 아이들에게는 약속을 지키고 안전한 느낌을 제공해 줄 어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제공할 형편이 안 될 때도 많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느 가족상담사는 결혼이나 가정이 무너진다 해도 안정감을 제공해 주는 어른이 한두 명만 주변에 있으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버텨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이모나 삼촌,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이가 자기 삶에서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아이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요.” 달리 말해 아이의 삶에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설령 아이의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 해도 말이다. (p.71)

 

나는 여러 아미시 가정을 방문했지만 집이 어수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장난감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을 때도 있고, 병조림을 위해 다듬던 그린빈이 식탁에 산처럼 쌓여 있을 때도 있고, 이런저런 애완동물과 아이들이 온 집 안을 뛰어다닐 때도 있다. 이럴 때 손님이 찾아오면 우리 잉글리시 여성은 사과를 해야겠다고 느끼지만 아미시 여성들은 결코 그러지 않는다. 우리 잉글리시와 달리 아미시들은 자신의 가정이든 자기 자신이든 완벽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p.124)

 

우리는 경쟁 사회에 산다. 그러다 보니 최우수 부모상 같은 것은 없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기억하려 애써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경쟁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육아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돌보는 일이어야 한다. 아미시들은 어린 나이부터 경쟁을 부추기는 대신에 ‘호흐무트(교만)’를 피하는 문화를 토대로 서로 돕고 협동하도록 가르친다. 아미시 지도자들이 아미시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도 서로 돕는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따돌임이나 괴롭힘 같은 사건이 아미시 학교에 어쩌다 일어난다 해도 매우 드물다. 아미시들은 그런 일을 참지 못한다. 선생님이 즉시 개입하지 않는다면 다른 아이들이라도 나서서 그런 일을 막을 것이다. (p.169)

 

필요할 때는 모든 차이를 잊고 서로 돕는 문화에 살기 때문에 아미시 아이들은 그토록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다. 아미시 공동체는 워낙 튼튼하게 짜여 있고 믿을 만하며 잘 유지되므로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강한 안전감과 안정감을 준다.

아미시 가족의 삶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전통부터 서로 함께 일을 돕고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 지는 전통에 이르기까지 공동체는 삶을 지탱해 주는 틀과 버팀목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아미시 아이들의 행복에 지워지지 않는 영향을 남긴다. (p.187)

 

 

 

“울타리가 있을 때 아이들은 더 자유롭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습니다.” 타샤 튜더가 사랑하고 실천한 삶의 방식, 기계문명과 소비주의를 거부하며 수백 년간 그 삶의 가치를 증명해 온 아미시, 그들은 어떻게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아이들을 키워 내고 있을까.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성실하고 신뢰받는 사람들로 꼽히는 아미시인들의 육아 지혜를 담은 책으로 잠투정하는 아기를 재우는 일부터 스마트폰이나 TV 등을 받아들이는 법, 십 대 자녀에게 책임감의 가치를 가르치는 일까지, 아미시의 삶에 녹아 있는 ‘육아 지혜’를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육아 방법’과 비교하며 우리 생활에 적용하는 균형 잡힌 통찰을 제시한다.

플레인 피플 plain people, 소박한 사람들이라고도 불리는 아미시 사람들. 그들은 뛰어난 사람, 아름다운 옷과 액세서리, 값진 소유물 등을 높이 평가하는 우리 사회와는 달리 평범한 사람, 소박한 옷, 현실적인 물품 등에 만족한다. 거기서는 남들보다 무엇을 더 잘한다거나 이웃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또 그런 것을 언급하는 일도 드물다. 아주 창피한 행동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육아란 책의 제목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방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아미시의 육아는 아이를 조종하고 관리하는 효율적인 ‘육아 방법’을 찾기보다는 수백 년간 그 가치를 증명해 온 ‘삶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아직도 대부분은 전기를 쓰지 않고, 차를 직접 소유하거나 운전하지도 않는다. 먼 길을 갈 때는 외부인이 모는 차를 이용하지만 대부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닌다. 한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땅에 농사를 짓고 현대 농사 기구는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미시가 스마트폰, 인터넷, TV 등 모든 현대 문명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려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먼저 신중하게 고민할 뿐이다. 모든 일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마다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가족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만약 새로운 기술들이 가족의 공존과 소통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미시 사람들을 처음 접했다. 그들의 가진 라이프 스타일은 정말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삶을 아직까지 고수해 올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것을 바라고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누리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며 살아간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그들의 결정과 행동을 높이 산다. 정말 무분별하게 아이들에게 노출되어있는 대중매체.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른인 나조차도 이미 스마트폰에 길들여져 스마트폰 없이는 타인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새로이 음식을 만드는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이 어찌 보면 참 낯설다. 뭔가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열성적인 부모보다는 아이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지지해주고 나름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육아는 늘 어렵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이런저런 방법을 두고 누가 옳다 그르다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다. 각자가 지닌 삶의 방식이 다 다르니까. 이들이 행하는 방법 또한 모두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진 육아 철학과 양육 방법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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