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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그런 꿈 없이는 가능성의 흥분이 생겨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지녀야 할 것은 엔진이나 두랄루민 패널이 아니다. 저 하늘 너머에 대한 상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꿈을 꾼다는 것은 때때로 어이가 없고 게을러 보일지라도 자잘한 스케줄을 꼼꼼하게 짜는 일보다 더 차원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꿈을 만드는 가능성을 모두 다 누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늙어서 두고두고 아쉬워할 일들. 그것들을 꼭 하고 싶은 것이다. (p.38)
달의 빛나지만 메마른 표면 위로 떠오르는 희고 우아한 지구. 아래 절반은 우주의 어둠에 잠겼고 둥근 상반신이 태양광에 고요하게 드러나 있다. 푸른색 흰색이 실타래처럼 신비롭게 엉킨. 그것은 일출도, 월출도 아니고 지구가 솟아나는 지출의 광경. 장엄하다. 그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 아폴로에서 촬영한 그 사진이 펼쳐지자 시끄러웠던 교실은 앞에서부터 뒤로 가면서 몇 초 만에 조용해졌다. 달에서 본 지구. 마치 다른 아이 속으로 들어가서 그 눈으로 나를 보는 충격이 지나갔다. 그것은 아주 먼 태초에 지구를 구슬처럼 빚어낸 신비로운 힘이 멀찍이서 자기 작품을 감상하던 시야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지구를 한번 보고 싶다고. 그러고 나면 내가 확 달라질 게 분명했다. (p.73)
어떻게 되었을까, 선발이 되는 것일까?
일요일 아침을 먹자마자 나는 방한점퍼의 후드를 쓰고 끈을 조인다. 운동을 해야 한다. 통합병원을 나오고 나서 내리 삼 주간 몰입하면서 하반기 성과를 높이려는 추가 보고서를 만들었다. 정말 미달로 굳어질까 봐 나중에는 입안의 속살이 탁탁 터졌다. 금요일 밤 데드라인에 맞춰 제출하고 나자 토요일은 내내 초주검이 되어 자다 깨다 하고 말았다. 드디어 일에서 풀려나와 누워 있는 동안 내 희미한 의식에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것은 하나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p.97)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니 눈시울이 새빨개지는 느낌이다. 그냥 울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내 기분의 밑바닥에는 쓸쓸한 아픔이 있다. 하지만 내 삶의 무대에는 그때 모든 조명이 일시에 켜졌다. 나의 어떤 의지와도 무관한 채로.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조차 없게 하는 하얀 불빛이. 나의 가슴은 너무나 두근거려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p.174)
우주를 꿈꾸던 평범한
샐러리맨 이진우는 우연히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한다. 쟁쟁한 경쟁자이자 우주라는 같은 꾸을 꾸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최종 선발 과정까지 나아간다. 숱한 고비와 위기를 이겨내고 회사로 돌아오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대기반으로 발경이 났다”는 좌천 통보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기억하지만 두 번째 우주인이자 지구를 열일곱 바퀴나 돈 게르만 티토프는 존재감이 없다.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은 누구나 알지만 함께한 버즈 올드린과 마이클 콜린스를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려는 이진우와 경쟁자들. 과연
누가 처음이 될 것인가.
책은 우주를 꿈꾸던 한
샐러리맨 연구원이 우주인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도전과 경쟁 그리고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동아일보 사회부와 문화부에서 14년 동안 기자로 일한 권기태 작가는 2006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중력>은 그 무렵 작가의 눈에 들어온 한 탈락자의 퇴장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중력>을 쓰기 위해 그해 직장을 그만두고
대전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내려가 우주인 선발 과정을 취재했다. 그는 그곳에서 천차만별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작가는 우주인 후보들과 함께 ‘별의 도시’라고 불리는 즈뵤즈드니 고로도크까지 동행하여 우주인 훈련 과정을
지켜보았다. 우주인 후보들은 매우 고달프고 힘든 상황이었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모습은 거의 연기에 가까웠다. 생업이 걸려 있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상태였다. 작가는 일주일 동안 러시아에 머물면서 공군기지에서 무중력 항공기를 체험했고 후보들의 수중 훈련
테스트도 지켜보았다. 또한 우주와 우주인에 관한 책, 우주인 훈련 영상 및 다큐멘터리 등을 탐독했다. <중력>에서 펼쳐지는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은 작가의 이와 같은 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경 속에서도 한 줄기
내비치는 가능성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도전해나가는 샐러리맨의 가슴 벅찬 감동 스토리 <중력>. 책속의 등장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치열했다. 그리고 생생했다.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동감있게
보여진다.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서로에 대한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소리없이 맴돌았다. 각자가 가진 두려움과 긴장감을 끌어 안고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오직 한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 물론 그 속에서는 자기를 과시하고 타인에게 미덥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섞여 있지만 으스대기 보다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료들을 격려하는 등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으려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보인다. 우주 그 광활한 대지를 향한 욕망, 그들의 간절함에 선뜻 어느 누구 하나를 응원하기가 두려워진다. 쉼없이
이어지던 이야기는 결국 마지막 장에 머무르고 그제서야 숨이 트인다. 우주를 향한 그들의 염원과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는다. 그 끝은 공허하고 또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