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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김지훈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은은한 달밤에 탁상에 앉아
저물어 가는 하루를 붙잡고 있었다
오고 가는 술 한 잔에 친구는 쓰라렸고
달빛의 조명에도 쉽게 슬펐다
배운 말은 많은데 위로해줄 언어가 없었다
단지 취할 뿐이었다
돌아가는 친구의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배춧잎 몇 장을 넣었다
친구가 떠난 자리는 공허하고 추웠다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금은 없어야 할 배춧잎이 있었다
그때, 그날 아버지도 내가 슬펐나 보다 (p.19)
▶ 무게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행복을 떠올리다
아련한 사람들을 그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무게’의 다른 표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하나라도 덜고 싶지만
무엇 하나 놓을 수 없음에
가슴이 아프다 (p.54)
▶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 덮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곪은 상처가 끝내 터져
아픔에 신음해도
다른 사람들도 버티고 산다며
끝내 외면하는 일
철이 든다는 것이
아플 때 소리 내지 말라는 의미란 걸
진작 알아더라면
난 좀 더 늦게 철이 들었을 텐데 (p.55)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책은 저자 본인의 이야기면서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한 시집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다 이제는 늙어버린 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에 이제 막 들어서는 아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애잔하게 그려낸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무게를 몸소 느끼며 어른이 되어가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청춘이 되려 한다. 아버지. 가장의 어깨에 드리워진 무게는 상당히 버겁다.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애를 쓰던 아버지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아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하고, 다양한 추억을 쌓으며 청춘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슬프게 바라본다. 겉으로는 아무 내색을 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감정이 북받치지 않을까. 먹먹하고 애잔하고 시 한 구절 한 구절에 마음이 젖어 든다. 예전이라면 그저 스치고 지나갔을 터인데 이제는 잠시 머무르기도 하고 가슴 한 편에 담아두기도 한다. 아버지를 그리고 있어서일까? 하나의 시에 여러 감정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들어오는 시들이 제법 많다. 우리 아버지도 아마 이렇게 삶을 살아오셨겠지. 어려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이제야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장의 무게. 언제부턴가 뒤돌아선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집을 떠나왔음에도 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다. 이만큼이나 컸음에도 아직 나는 예전의 어린 모습으로 비춰지나보다. 이제는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