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니까 - 마음이 따뜻해지는 엄마의 사랑법
박영숙 지음 / 디스커버리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때로는 아름다워서 슬퍼질 때가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나는 마음이 시렸다. 나는 이 낯선 나라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살러 온’ 것이었다. 무턱대고 즐겨도 좋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밀려왔을까’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ET처럼 어리둥절했다. 깨어나기 힘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p.22)

 

그리움! 고국을 떠나온 후, 우리 가족은 한참 동안 부초처럼 흔들거렸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두는 일이 잦았고, 별일 아닌데도 자주 울었다. 어느 집 담벼락에 핀 노란 민들레만 봐도 걸음이 멈춰졌다. ‘어쩜 저렇게 똑같이 생겼지?’ 나도 모르게 쭈그리고 앉아, 그 작은 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내 나라에서 본 것과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그 꽃은 내게로 와 의미’가 되어 버렸다. (p.73)

 

그랬다. 내가 사춘기 아이 셋과 ‘지옥’을 헤매고 있을 때, 남편은 그조차 함께 하지 못했다. 아무리 지옥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게 가족이 아닌가? 만날 때마다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컸다. 몸도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지독하게 입이 짧아 얼굴에 버짐이 필 정도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피자 한 판이 부족할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아이들을 만나는 남편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모습이었을 것이다. 낯선 만큼 서글프고, 어쩌면 허망했으리라. 그는 아이들을,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본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토록 큰 슬픔을 감내하는가? 또다시 원점에 선 기분이다. 막막하고 먹먹하다. (p.152)

 

사춘기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십년 치를 벌충이라도 하듯 최선을 다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경험했다. 끊임없이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우리는 서로를 할퀴고 밀치며 버둥거린다. ‘엄마’라는 직업은 자격증도 없고, 수습 시간도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상처를 주고, 반성과 고백을 반복한다. 너무 힘겨워 도망치고 싶을 때, 어김없이 엄마가 떠오른다. 이렇게 힘든데, 형편마저 녹록치 않았던 엄마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아침마다 학용품을 사 달라고, 용돈 달라고 손 내미는 자식이 얼마나 버거웠을지, 어쩔 수 없이 주인집에 돈을 빌리러 갔던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너무 늦은 지금에서야 가늠이 된다. 끝까지 지난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엄마가 새삼 고맙다. 그녀가 있어 지금 내가 있다. (p.222)

 

 

세상은 참 모질었다. 좀 늦게 자라는 ‘나무’를 기다려 줄 관용이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저자의 딸아이는 또래보다 몸이 약하고 마음도 여렸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딸을 외면하고 무시했다. 학교에 찾아가고, 부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이들이 딸을 외면하듯 그들도 저자를 외면했다. 부모들은 어른스럽지 못했고, 교사와 학교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았다. 경쟁, 무시, 회피, 무책임. 그땐 대한민국이 그랬다. ‘정녕 이것이 답인가? 무슨 방도가 없을까?’ 아침마다 등 떠밀 듯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저자는 스스로 끊임없이 반문했다.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십 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 작별을 고하고 이제 일 대신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기로 했다. 너무 늦기 전에, 평생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서라면 세상 어디든 가보자!’ 직장을 그만두자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봄꽃이 필 무렵, 저자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조기 유학’의 바람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 딸을 데리고 캐나다 빅토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게 내 나라에서 상처받은 아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었다.

 

 

밴쿠버에서 한 시간 반쯤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한가롭고 아름다운 도시 빅토리아. 하지만 아무리 빅토리아가 좋아도 그건 남의 일이었다. 기대를 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어서’ 떠난 유학길을 참 쓸쓸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던 저자에게 낯선 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업주부의 삶은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하고 불안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험난한 유학 생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지금 내 곁에 선 나의 아이를 떠올렸고 또 이제껏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스런 눈길로 나를 보듬어 안아주는 엄마를 떠올렸다. 그녀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나 있었을까. 내가 아파하는 순간에도,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스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때도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우리 엄마. 그렇게 받은 사랑이 이제는 내 자식에게로 되물림되어 고스란히 전해져간다. 아마 저자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 모든 것은 저자가 엄마이기에,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 오죽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으로 떠났을까. 아이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저자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서러운 일이 천지인 이방인의 나라에서 세 아이를 데리고 정착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저자는 살아가면서 정말 다양한 일들과 마주한다. 하루하루가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서러움이 올라오고 울컥 눈물이 났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저절로 영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오해’였다. 그렇게 6년을 넘게 유학생의 엄마로 살아온 저자. 이제 이방인의 삶은 끝났다. 두 딸은 미국 대학에, 뒤늦게 합류한 막내아들을 미국 보딩 스쿨에 입학시키고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그녀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물론 엄마의 역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순간순간 자녀들이 자잘하게 그녀의 삶에 들쑥날쑥 드나들겠지만 이젠 그녀만의 삶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 그녀가 한 말처럼 너무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멋지게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자식이 아닌 나 자신을 우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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