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혜, 듣기 아우름 33
서정록 지음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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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은 잘해도 귀로 듣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은 즉시 우리 마음을 끌어당기지만, 귀에 들리는 것은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매달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귀로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눈은 나를 밖으로 향하게 하지만, 귀는 외부의 정보를 모아서 내게 가져온다. 눈은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만, 귀는 내가 존재의 중심이 되게 한다. (p.5)

 

어르신들의 가르침은 한결같다. 자신들이 그 또래에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자상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만일 내 인생의 과제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래서 온전히 거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일찌감치 방황을 끝내고 주어진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따라서 신명탐구를 통해 신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해도, 마을 공동체의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족과 이웃을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p.13)

 

소리를 무심하게 듣게 되면 단순히 소음에 불과하지만, 마음을 실어 듣게 되면 소리의 뒤에 있는 존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그 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귀를 가리켜 마음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눈과 귀는 다르다. 고양이가 상대적으로 개보다 사람을 덜 따르는 것은 시력에 의존하는 습성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개가 그처럼 정에 약한 것은 귀를 열어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주는 습성 때문이 아닐까. 개는 일단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 주인에게는 절대복종한다. 그러나 보통의 고양이는 다정하게 굴어도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지 않는다. 대신 혼자 고독을 즐긴다. 좀처럼 자신의 내면을 열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음을 여는 데는 눈보다는 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37)

 

인디언들은 그렇게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자연 존재의 이야기와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또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사람은 이런 침묵과 듣기를 통해 성숙한다. 그리고 투명해진다. 결코 나를 앞세우고 남 위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열고 낮춘다. 침묵과 듣기는 우주와 자연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디언들에게 듣기는 일종의 숨쉬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 곳곳에 깊숙이 배여 있다. 침묵과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에 이끌리고 나를 앞세우고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지혜가 들어설 틈이 없다. 지혜가 없는 문화는 죽은 문화다. 바로 여기에 현대문명의 비극이 있다. (p.64)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서른세 번째 주제는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듣기’의 지혜를 배우는 것. 다음 세대가 묻는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들어주면 결국 내 손해 아닌가요? 저자가 답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매달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귀로 듣습니다. 깊게 듣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공존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동서양과 시대를 아우르며 듣기에 관한 모든 지혜를 집대성했다. 1부에서는 원주민 사회와 전통 사회의 듣기 문화를, 2부에서는 태교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인디언의 태교에서부터 시작해 초기 불교, 성경, 샤머니즘의 듣기 등 세상의 모든 듣기 문화와 소리와 음악까지 더해 듣기의 힘을 규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진짜 귀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신선하다. 듣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갑자기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까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요즘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sns로 활발하게 소통이 가능한 시대이다 보니 듣기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긴 했다. 사람을 거치지 않고 집 안에서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상에 살다보니 듣는 것에 보다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두들가며, 눈으로 소통을 이어가는 행위가 익숙해져버렸다. 삶이 편리해질수록 듣는 행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책에 의하면 인디언들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듣는 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듣기 수업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숲길이나 호숫가를 거닐며 아이에게 꾸준히 가족이나 조상,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들판에 나가 하루 종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인디언 아이들은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 왜 하필 듣기일까? 저자의 말에 의하면 눈은 다른 존재에 대한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관념을 가져다주지만, 귀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하여 듣기 시작하면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된다. 하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관념을 일방적으로 강화하기 쉽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에 대한 견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눈으로만 맺은 관계에서는 오해와 불신이 생겨난다. 그러나 귀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듣기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무심하게 듣게 되면 단순한 소음에 불과하지만, 마음을 실어 듣게 되면 소리 뒤에 있는 존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그 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잘 듣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가 말하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들을 줄 알아야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한가운데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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