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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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는 게 더 좋다, 주는 게 더 좋다. 이 둘을 놓고 “너는 어느 쪽이니” 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도무지 주는 게 더 좋다고 선택하는 멋진 이들에게 백 프로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을 받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해보고 싶다. 선물은 주거나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되는 것이라고. 선물이 되는 사건. 선물이 되는 시간. 선물이 되는 말. 선물이 되는 표정. 선물이 되는 사람이 선물이 되는 말과 함께 선물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자그마하고 사소한 선물 하나를 건넸을 때, 그것은 선물이 되는 시간이자 선물이 되는 사건이다. 그때 손과 손 사이에서 전달되는 사물 하나는 그 무엇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p.22)

 

독자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 시집을 찾아 헤맨다. 꼭 듣고 싶은 한마디가 시에 적혀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도, 희망이 있다는 말도, 인간을 믿어보자는 말도,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도 뻔히 거짓말인 줄 다 아는 시대다. 어쩌면 뻔한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시가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보겠다며 다른 방식으로 고백해보고 싶어서 시집을 선물하게 되는 건 아닐까. (p.173)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는 무관한 일인 것만 같았다. 설렘은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움을 달래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그리운 사람과 헤어져 돌아섰을 때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운’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여 ‘사람’만을 남겨둔 채로 그 사람을 대하는 일. 그때부터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생각해온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살아온 그 사람을 알아갈 수 있었다. (p.223)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인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과 지루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이미 비루함과 지루함,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하기 때문이다. (p.252)

 

 

책은 겨울 이야기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이야기를 맞이하며 끝이 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저자가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쓰지 않고, 저자 자신이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들만을 글로 써 놓은 것으로 스스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하고, 만나고, 보고, 겪은 일들 이어서 그런지 제법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아니 거리낌 없이 곁을 파고들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녀의 일상 단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에 대한 애정이 곧 나에 대한 애정임을 입증하고 싶어 했던 저자의 마음이 글 여기저기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어떻게 삶을 혼자서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늘 누군가는 나의 곁에 있었고 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지, 평범한 하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특별함이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는 결국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었다. 나와 나를 포함하고 있는 세상. 어찌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고, 동네를 산책하고, 여행을 하는 등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하루이지만 그 속에는 평범함을 가장한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편안하면서 익숙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낯선 느낌이랄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속에 소소한 행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저자의 말처럼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스스로에게서 멀어져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맞이한 순간들은 유난스럽지 않았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듯한 자연스러움에 이끌려 편안한 마음으로 나도 같이 유유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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