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도대체 뭐가 든 거야.”

썩기라도 하는 물건이라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간지는 그 자리에서 가방 지퍼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검은 비닐봉지였다. 반투명한 봉지로 바뀌기 전에 쓰레기를 버릴 때 쓰던 것과 비슷한 비닐봉지가 가방에 꽉 차 있었다. 봉지 아가리를 벌리고 안을 들여다본 순간, 간지는 숨이 멎을 뻔했다. 돈다발이 그득했다. 10만 엔이나 20만 엔 정도가 아니다. 띠종이로 묶은 만 엔짜리 다발이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허둥지둥 비닐봉지를 오므리고 가방 지퍼를 잠갔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기분이 들었다. (p.14)

 

 

최영희가 사업가로서 보여준 수완은 대단했다. 어디선가 그러모은 동향 여자들을 마소 부리듯이 혹사시킨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정상 궤도에 올랐다. 료스케의 호주머니도 금세 두둑해졌다. 부업을 위해 마련한 타인 명의 계좌에는 달마다 형사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왔다. 형사가 느닷없이 돈지랄을 하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보는지 료스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활권에서 흥청되지 않을 정도의 신중함은 아직 남아 있었다. 비번 날은 도쿄나 간사이 지방으로 나가서 비싼 술을 마시고 불법 카지노에서 닥치는 대로 돈을 걸었다. 자신에게도 드디어 운이 돌아왔다고 혼자 싱글거렸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생활에 끝이 왔다. 최영희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미리 계획한 듯 살던 맨션도 빈껍데기처럼 텅 비었고, 가게 종업원들에게 물어봐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에스테가 폐업처리 되자 달마다 들아오던 배당금도 당연히 뚝 끊어졌다. 유흥비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문제는 고다가 빌려준 돈이었다. (p.36)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옛날부터 미나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어째서 아버지는 목을 맸을까. 어째서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대학교에 가는데 나는 일해야 할까. 어째서 죽어서 일만 하며 고생한 어머니가 암에 걸려야 할까. 어째서······. 생각해도 뾰족한 수는 없다. 분명 운명이리라.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서러운 일도 많지만 만약 행복한 순서대로 사람을 줄 세우면 뜻밖에도 자신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위치에 서지 않을까. (p.52)

 

간지는 올가을에 환갑이다. ‘유토피아’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5년, 일은 익숙해졌고 아직 체력에도 자신이 있지만 역시 밤샘 근무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주간 근무와 달리 심야 수당이 붙으니 거부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일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밤에 혼자 일을 하고 있는데 정체불명의 남자가 들어와 커다란 가방을 사물함에 던져두고 담배를 사러 나가더니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간지가 매상을 금고에 넣고 옷장을 점검하면서 발견한 두툼한 그의 가방 안에는 돈다발이 그윽했다. 10만 엔이나 20만 엔 정도가 아니다. 무려 1억 엔. 엄청난 액수의 현금이다. 오래지 않아 가방을 찾으러 오리라 생각했던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마음이 자꾸 보스턴백으로 쏠린다. 집에 계신 어머니는 치매가 진행되어 매일같이 사고를 치고, 아내는 다리를 다쳐 입원하고, 결혼한 딸은 생활이 어려워 빚을 지고, 목욕탕 매니저는 간지를 해고하려는 지금 이 가방 속 돈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오직 간지뿐이다.

P현경 우시가누마 서 생활안전과 형사인 료스케는 애인 최영희의 감언이설에 속아 그녀가 운영하는 가게에 투자하기 위해 조직 폭력배 고다 파에게 2천만 엔이라는 빚을 진 상태. 돈을 빌리면 관계가 더 깊어질 것이 뻔했지만, 돈과 여색으로 눈이 흐려진 료스케는 이성적으로 따져보지도 않고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의 수완으로 가게는 금방 정상 궤도에 오르고 료스케의 호주머니도 금세 두둑해졌지만 최영희는 어느 날 갑자기 미리 계획이나 한 듯 행방이 묘연해졌다. 가게가 폐업 처리되자 료스케에게 들어오던 배당금은 뚝 끊겨버리고 거액의 빚만 남았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료스케는 급기야 사기를 저지른 동창을 구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도피자금을 빼앗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그때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최영희가 거액의 돈과 함께 나타난다.

평범한 주부였던 미나는 두 해 전 집에 놀러온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주식 투자에 푹 빠지면서 결혼하고 저금한 돈을 몽땅 날리고 소비자 금융 회사에서 거액의 빚까지 왕창 떠안게 된다. 독촉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남편 다케오에게 털어놓았고 이를 알게 된 다케오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때리고 통장, 카드, 인감까지 전부 빼앗아갔다. 그리고 집세와 쥐꼬리만한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았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미나는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무 자격도 없는 여자를 정사원으로 뽑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물장사에 뛰어들 수도 없어서 미나는 구인광고를 보고 기이바 제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후 다케오는 자주 폭력을 휘두르며 억지로 몸을 요구하고 사랑 없는 부부 생활에 지친 미나는 인터넷 윤락 사이트 ‘유부녀의 정원’를 통해 성매매를 하며 그곳에서 만난 신야와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미나가 남편에게 맞고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야는 분노하며 그를 죽여주겠다며 주도면밀하게 뺑소니 계획을 세우고 사건 당일 새벽 미나에게 남편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남편에게 걸린 보험금은 9천만 엔. 이제 그에게서 벗어나는 걸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남편은 버젓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신야는 도대체 누구를 죽인 걸까?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지푸라기뿐일 때 과연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이것마저 놓칠 것인가? 책은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장과 정의감 따위 개나 준 악덕 형사, 가정 폭력과 빚에 시달리는 가정주부 등 저마다 고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막다른 길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1억 엔을 얻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추리 소설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하류 인생들의 고군분투를 숨 막히게 그려낸다. 과연 이들 가운데 거액의 돈을 손에 넣는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간지, 료스케, 미나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 세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여지지만 점차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진실이 펼쳐지면서 혼란을 일으킨다. 의문의 사체, 은밀한 제안, 베일에 싸인 과거... 세 주인공들의 삶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에 다다랐다. 절박한 상황 속, 서로 다른 욕망.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이들 세 사람.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