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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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전문의가 손을 흔들어 건조시키면서 카린에게 말한다. 방금 엑스레이를 찍었고, 혈액검사 1차 결과도 나왔는데 좋지 않습니다. 카린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다. 나는 카린의 발을 문지른다. 선임 전문의가 허리를 기울여 카린의 눈을 들여다본다. 내 말 들립니까, 카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여기 쇠데르 병원은 물론 카롤린스카 병원의 혈액 전문의하고도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환자분의 백혈구가 크게 증가했어요. 급성 백혈병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카린이 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몹시 희미하게 들린다. 카린, 나 여기 있어.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겨낼 수 있어. 카린이 손을 젓는다. 나는 산소마스크를 쓴 그녀의 입술을 읽어보려고 한다. 카린이 아기에 대해 묻는데요. 내가 말한다. 카린이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지금 제게 최고 우선순위는 부인입니다. 선임 전문의가 말한다. 아기는 자궁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습니다. (p.13)

 

카린의 몸이 쉽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아주 잘게 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마치 작은 진동이 내 손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커튼 뒤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목소리,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 뭔가를 빨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카린의 손을 더욱더 꼭 쥐고 속삭인다. 나 여기 있어, 카린.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눈을 감고,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박수 소리와 비명을 듣는다. 날카롭고 무시무시하지만 아름답기도 한 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계속 이어진다. 지금 시각 14시 35분. 출생 시각으로 기록하세요. 나는 눈을 뜨고 카린의 손을 잡은 채 일어선다. 집도의가 리비아의 다리를 잡고 있다. (P.42)

 

리비아에게서 카린에게로, 다시 카린에게서 리비아에게로 담요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내 작전에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동참했다. 그들이 라벨을 써준다. 엄마 냄새. 리비아 냄새. 나는 새 담요를 카린 곁에 놓아둔다. (P.98)

 

간호사는 뉘그렌이 기계들을 향해 조금 딱딱한 태도로 다가가며 불러주는 말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는 것 같다. 환자는 05시 52분부터 심장무수축 상태이며, 칼륨이 증가하고 있고, 젖산 수치는 28 유지, 에크모 회전수는 분당 5천5백에서 변화 없음. 기계를 통과하는 혈액량은 5.1리터. 생명의 지속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제 호흡기와 에크모의 전원을 차단한다. 기계들의 소리가 모두 멎자 방이 조용해진다. 뉘그렌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말을 덧붙인다. 환자의 사망시각은 06시 31분. (p.108)

 

 

 

톰은 약 1개월 반 후면 아빠가 될 예정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미처 하지 못한 아내 카린과의 결혼을 계획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카린이 갑작스럽게 고열과 기침,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가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독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검사 끝에 담당 의사는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어놓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그의 간절한 기도. 이대로 하루만 더, 딱 하루만 더 내 곁에서 함께 있어 주길. 그저 이렇게 조금만 더 벼텨주길 바라는 그의 간절함이 책 속을 가득히 메운다.

 

책은 죽어가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마지막 온기를 전하려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실제로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 카린을 급성 백혈병으로 잃고, 현재 딸 리비아를 홀로 키우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기록한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은 늘 그렇듯 예기치 못한 순간 소리 없이 다가온다. 톰을 덮쳐온 이 불행도 마찬가지. 저자가 실제로 겪은 그 모든 일들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유유히 흘러간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천천히. 이야기의 모든 상황들이 오직 그의 시선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지루함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건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가슴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임에도 눈앞으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의 애달픈 사랑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점점 소리 없이 다가오는 아내와의 이별을 그 누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준다. 톰은 그 아픈 시간들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아니 살아나간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그의 기억 속에서 아내는 언제나 그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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