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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그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뛰어난 ‘근로자’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p.26)
결국 로봇은 인간에 필적할 수 없다······. 다쿠야는 이런 식의 얘기가 제일 싫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일수록 능력도 없기 마련이라 더 불쾌했다. 인간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겁을 먹고, 질투나 할 뿐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대체로 인간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살 뿐이다. 지시가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 프로그램에 따라하는 일이라면 로봇이 훨씬 우수하다. 게다가 저 녀석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늘어선 로봇을 등지고 다쿠야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것이 그가 로봇을 연구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포함해 인간은 반드시 배신한다. (p.165)
이 책의 주인공인 스에나가 다쿠야. 그가 중견 산업기기 메이커인 MM중공에 취직한 지는 올해로 9년. 시가 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미장공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버지다운 살가운 애정을 보여준 기억은 거의 없다. 언제나 취해 있었고, 싸구려 술을 사기 위해서라면 다쿠야의 초등학교 급식비까지 서슴없이 써버리는 남자였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다쿠야는 인간에 대한 짙은 불신과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실력을 쌓기 위해 모든 욕망을 억제하며 노력한 결과 지금의 회사에서 엘리트 로봇 개발자로 성공한다. 하지만 일개 사원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하고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전무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어 전무의 딸과 결혼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야스코가 임신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그에게 협박을 해오면서 그의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그러던 중 뜻밖에 호출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자신의 처지와 같은 두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세 남자는 야스코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여 이른바 ‘릴레이 살인’을 모의한다. 오사카로부터 도교로 이어지는 살인과 운반, 시체처리를 세 사람이 분담하는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데 막상 그날이 되어 운반되어 온 시체는 야스코가 아니었다. 공범 중에 한 명이 살해당한 것.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알 수 없는 살인은 계속된다.
각자의 욕망을 위해 살인 계획을 세운 세 남자. 욕망에 방해가 되는 여성을 처리하려 하지만 뜻밖에도 살인의 바통은 세 남자 중 한 명에게로 돌아간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가운데 살인은 계속되고 인간의 욕망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간다. 욕심 때문에 생명을 잃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부와 명예를 다 잃어도 사람들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다섯 번의 살인은 저마다 완벽한 트릭을 가지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륵 얽히고 얽힌 실타레가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데 그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답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427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거침없이 단숨에 읽어나간다. 작가는 이공대 출신의 경험을 살려 인간의 뜨거운 욕망과 기계의 차가움을 결합시켰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주인공의 로봇인 브루투스에게 심장을 불어 넣은 것. 인간의 지시 없이는 혼자 힘으로 가동하지 않는 로봇이 인간을 기계의 부품 정도로만 생각한 주인에게 놀라운 결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