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 장애인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이유 아우름 32
류승연 지음 / 샘터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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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예요.
밑줄 쫙!
바로 여기에서부터 장애인 차별이 시작됩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시작됩니다.
장애인은 ‘나와 같은 너’가 아닌 ‘나와 다른 너’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배척을 당하거나 오히려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p.39)

 

 

장애는 미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장애는 그냥 장애일 뿐입니다. 곱슬머리를 갖고 있는 게 남들에게 미안할 일이 아니듯이, 지적장애가 있는 게 미안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 누구도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장애는 ‘그냥’ 찾아옵니다. 나 아니면 너, 확률 게임에서 앞서 걸린 누군가로부터 장애를 먼저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 더불어 장애라는 것은 싸워서 이기거나, 노력해서 극복해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싸우거나 극복해서 발달장애를 없애는 건 현대 의학에서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는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긋고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될 겁니다. 인류의 진화를 바꾸는 일이 될 테니까요. 이렇듯 장애는 미안해할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개인의 특성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듯이 제 아들은 단지 지적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특성을 지닌 어른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p.38)

 

 

장애와는 무관한 비장애인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다 지적장애인 자식을 키우며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을 10년 가까지 살다 보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진짜 공격적이고 무서운 것은 느린 속도로 성장해가는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장애가 없어 당당하고 똑똑한 우리들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애인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호불호가 있으니까요. 특별히 피해를 받은 적이 없지만 이유 없이 그냥 꺼려질 수도 있어요. 그런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피해를 받은 게 없음에도 싫어하는 정치인이 있고 싫어하는 연예인도 있거든요.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싫다고 해서 그들이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정당화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좋고 싫은 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문제이고, 위험하다는 건 ‘사실 여부’에 관한 문제입니다. 감정 때문에 사실을 호도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p.50)

 

 

장애인과 그 가족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여러분과 똑같은 ‘보통의’이웃입니다.
울고 웃고 소리치고 싸우고 사랑하고 웃어대는 여러분처럼,
우리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답니다.
다만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고,
그로 인해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뿐이예요. (p.60)

 

 

장애에 대한 편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그것이 내게 있는 장애든, 내 자식에게 있는 장애든, 내 친구에게 있는 장애든 누구나 당당히 말하고 일상적으로 거론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아들은 팔에 큰 점이 있구나? 내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어.”
이런 이야기가 편하게 오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를 쉬쉬하며 말해선 안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얘기하고 장애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장애’라는 단어를 가치판단 없이 순수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p.86)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세상에서 만나야 합니다. 세상은 장애인을 남의 일이라고 배척해서도 안 되고, 장애인과 그 가족 역시 세상에서 상처받았다며 숨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어차피 장애와 비장애는 그 경계조차 모호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정상’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노화를 맞게 될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장애인이 될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신체 기능의 저하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됩니다. 그런 우리는 정상인가요? 아니면 비정상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을 ‘장애’에만 매몰돼 바라보는 걸 멈춰야 합니다. 왜냐고요? ‘건강한 삶’에는 장애가 장벽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에는 장애인 접근 금지 같은 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p.179)

 

 

세상에 두려울 것이라곤 없던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에서 세상의 모든 시선이 두려운 장애 아이 엄마가 된 지 10년. 저자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세상에 ‘편입’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세상이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젠 세상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 이은 두 번째 책으로 전작에서는 발달장애 아이가 있는 가정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하나의 세상에서 공존해야 하는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게 된 장애라는 단어,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삶. 장애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며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그녀의 생생한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고 애틋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시야를 넓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지금은 장애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 치부하겠지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나 혹은 우리 가족 중 누군가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장애인? 저자의 말에 의하면 장애는 한 개인을 대표하는 특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여러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장애인은 장애가 있을 뿐인 사람이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에도 장애라는 단어가 붙으면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인상을 찌부리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못 볼 걸 본 것 마냥 인상을 쓰고 자리를 피하며 심하면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그게 아이일 경우는 더 심각하다. 혹여나 자신의 아이에게 해코지를 할까 싶어 기를 쓰고 닥달한다. 자기 자식이 소중하듯 남의 자식도 소중하단 걸 모르지 않을텐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그런 자신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이 일은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또 앞으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의견을 나누며 바꿔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모두가 이 책을 한 번 이라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당연히 안 좋을거라 생각하지만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없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잠시라도 그들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의 말처럼 이 길은 저 혼자 걸어간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세상의, 우리들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그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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