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보노보노> 속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낯선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도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미움받는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하의 소심한 보노보노는 온갖 걱정은 다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것 같다는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너부리는 항상 밉상인 짓을 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누가 미워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 포로리나 야옹이 형도 마찬가지다. 관계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늘 사랑만 받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미워하면 미워하는 대로 그저 받아들인다. (p.41)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게 있다.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거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건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사이좋게 지낼 순 없는 걸까. (p.65)

 

 

 

세월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유연함이다. 유연함은 우리를 즐거움이나 재미에도 무던해지게 만들어준다. 이는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뜻도 되지만, 재미가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즐겁지 않은 삶은 그만큼 나쁠 것도 없는 삶이다. 재미도 없고 특별할 거라곤 더 없는 요즘 내 일상을 떠올리다 보니, 아무것도 없는 삶은 그 이유만으로도 제일 좋은 삶이라던 야옹이 형의 말이 떠오른다. 어릴 적,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말도 점점 수긍이 가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어른이 된 건가 싶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p.98)

 

 

 

내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직 안 됐다면 “안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p.133)

 

 

 

소중한 것은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소중한 것은 움직이는 게 아니야.
소중한 것은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 거야.

보노보노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 것.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것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설명하기 어렵고, 납득하기 힘들고, 그래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없으면 안 될 무언가. 그것 때문에 때때로 인생은 힘들어지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지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 정이나 진심 같은 것.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들이 그런 것처럼. (p.158)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공간 안에는 나보다 큰 것들은 그다지 없잖아.
‘가장 큰 나’의 고민이니까 엄청난 일이라 느껴지는 거 아닐까.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면, 나보다 큰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게다가 그것들은 고민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단 말이지.
대자연의 거대함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고민 같은 건 있지도 않은 거야. (p.205)

 

 

 

 

 

 

 

 

 

 

보노보노에게 첫눈에 반했다가 살짝 지루해했다가 또다시 생각나서 푹 빠졌다가 한참 안 보고 있다가도 불쑥 떠올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정주행하기. 이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어느새 보노보노를 친구처럼 여기게 된 저자 김신회. 보노보노만큼이나 겁 많고, 포로리처럼 고집이 세고, 너부리인 양 자주 직언을 하는 그녀는 보노보노를 알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가끔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만나지만 다들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과 내가 이렇게 사는 데 이유가 있듯이 누군가가 그렇게 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해하든 하지 않든, 앞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므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재밌다고 까르륵 웃고 떠들던 어렸을 때와 달리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보노보노는 어느 것 하나 내버릴 것 없이 저마다 굵직굵직한 울림이 있다. 심오한 이야기들을 어찌 그리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을 수 있는걸까. 소심한 보노보노, 버럭쟁이 너부리, 수다쟁이 포로리, 듬직한 야옹이 형 등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가슴에 깊게 파고든다. 각 글마다 가슴을 두드리는 묵직한 울림에 여운이 오래도록 길게 남는다. 이래서 책을 여러 번 읽어보라고 하나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많은 글들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도대체 어딜 보고 웃었던건지 웃음 포인트가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을 위로 받고 또 무거워진 마음을 덜어간다.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싶어 하루 종일 뾰족하게 날이 서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한다.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노보노 이야기를 읽다보면 귀여운 보노보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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