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이 보기왕이라고 했어.”
다음 순간, 교복 안에 받쳐 입은 셔츠 밑에서 팔의 털이 파도치듯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그날이다. 그날 오후에 할머니 집에 찾아온 회색 그림자.
그건 할아버지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보기왕이었을까?
그때 느꼈던 공포와 할머니 말에서 짐작하건대, 할아버지는 그날 온 손님을 보기왕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그 손님은 누구였을까. 게다가 그 기묘한 단어······. (p.24)

 

 

“오지마······ 오면 안 돼.”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찌지직 하고 천 찢어지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마코토의 액막이도 효과가 없다. 온다······.
다음 순간, 갑자기 공기가 달라졌다. 집 안에 떠다니던 긴장감도 사라졌다. 딸의 울음소리는 계속됐지만 공포에 떨던 아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딸을 달랬다. 부적 주머니가 찢어지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마코토가 천천히 자세를 바꾼 뒤, 두 손을 늘어뜨린 채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갔어. 일단 지금은······.” (p.112)

 

 

 

괴물, 즉 보기왕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빈틈을 메운 것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코토가 그토록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상상을 초월한 힘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영매사가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것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영매사의 팔이 뜯겨나가고,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급차 안에서 죽었다. 그리고······ 다하라도 죽었다. 머리를 잡아먹히고, 피바다로 변한 거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p.247)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다하라 히데키와 가나, 어느 날 히데키의 회사에 치사의 일로 볼일이 있다며 손님이 찾아온다. 딸의 일이라고? 혹시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허겁지겁 1층으로 달려가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만일을 위해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지만, 그럴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치사라니? 지금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말하는건가. 무사히 태어난 후에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말하자며 아직 그 누구에게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 순간 그에게 손님의 방문을 알려준 후배 다카나시는 갑자기 팔에서 피가 나더니 원인 불명의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날이 갈수록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이후에도 전화나 메일이 오는 등 괴이한 일이 반복되자 히데키는 어렸을 적 자신을 찾아왔던 ‘보기왕’이라는 괴물을 떠올린다. 소름 끼치는 괴물 보기왕.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괴물이 왜 이제 와서 자신을 만나러 오는 걸까. 보기왕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고, 급기야 히데키의 아내와 딸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그를 점점 공포의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이에 히데키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옛친구인 가라쿠사의 도움을 받아 히가 마코토라는 영매사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히데키 부부를 위협해오는 ‘그것’이 끔찍한 존재임을 감지한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내가 좋아하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극찬도 있고 해서 정말 기대가 컸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차일 피일 미루다 이제서야 읽어보게 된 <보기왕이 온다>. 누군가 이런 책은 밤에 봐야한다며 해가 지고 난 뒤 펼쳐들었다는데 왕왕왕 겁쟁이인 나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훤한 대낮에 홀로 앉아 책을 읽었더랬다. 그것도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궁시렁거리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집 앞 카페에 자리 잡을 껄 그랬나? 이런 생각도 사실 쬐끔 아니 많이 많이 했음. 그런데 카페에서는 책이 안 읽어지는데 어쩌나. 암튼 결론은 이 책 완전 대박인데?!! 책장이 술술술 넘어간다. 솔직히 읽는데 좀 무섭긴 했다. 잔뜩 예민해져서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꼭 읽어봐야한다. 왜? 무서워도 재밌으니까! 심장이 쫄깃쫄깃.

 

책은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흥미롭게도 각 장의 주인공이 모두 다르다. 1장 의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히데키로 그가 보기왕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그것으로부터 아내와 아이를 지켜내려는 모습을, 2장 소유자에서는 그의 부인인 가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마지막 3장 제삼자에서는 말 그대로 제삼자인 오컬트 작가 노자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모든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세 개의 이야기는 하나씩 각각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치밀하게 이어져 있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공포와 반전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무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이 상당하다. 사람을 납치해서 산으로 데려가는 괴물. 보기왕.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 깊숙히 자리한 미움과 증오, 나약함과 어리석음 같은 시커먼 마음 때문이 아닐까.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교활하고 악독할 수 있을까. 진짜 너무 무섭다. 이놈의 보기왕 ㅠㅠ 그나저나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까? 망했다. 그래도 집에 초인종이 없어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