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요리하는 것도 하루하루의 즐거움 가운데 중대한 요소다. 다른 집안일은 그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대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손이 많이 가고 기교가 필요한 요리는 못 만들지만 자두나 딸기, 복숭아 잼을 만들거나 빵과 달걀과 우유에 바닐라를 넣은 따끈한 과자, 얼음사탕을 뜨거울 때 녹인 차가운 홍차 등은 자주 즐긴다. (p.72)

 

 

확실히 애정을 주고받은 것에 관해서는 여동생이 나보다 어른이다. 나는 이미 어지간히 나이를 먹었다. 여태껏 마음이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기보다 언젠까지나 나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인, 곤란한 인간인 것 같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듯 선종의 법력 높은 스님을 찾아간다 해도 안 될 것 같다. 만사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어리석고 평범한 인간이다. 쓸 수 있는 약은 없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 자신만 생각할 테지. 부모님께 사랑받기만 하고 보답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고작 네 살짜리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p.229)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정신의 선구자 모리 마리. 그녀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로, 부유한 집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유년 시절과 달리, 두 번의 결혼 생활은 모두 파국으로 끝나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하거나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 행복을 가꿔나갔다. 행복을 위한 그녀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하루 세끼 식사는 맛있고 근사하게 할 것! 아무리 곤란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맛있는 것 앞에서는 누구나 솔직해지고 행복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의 핵심은 바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있다. 솔직히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생활력이 없었던 마리의 집은 늘 심각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물건 탓에 방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방치한 꽃들은 저절로 드라이플라워가 될 정도였다. 시종일관 철없이 굴고 제멋대로에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그녀는 몸만 어른이지 속은 어린 아이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절대 자기 취향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을 간다. 어찌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녀의 참 매력이다. 겉모습만 본다면 혼자서 고독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녀의 인생은 고달프긴 했으나 스스로 행복했다. 주어진 상황에서도 불만을 털어놓기보다 행복한 삶으로 바꿔나간다. 현실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하며 욕심을 부리는 모습들이 만연한 요즘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에는 진심이 우러난다. 그에 내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만들며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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