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일라나 쿠르샨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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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탈무드에 관한 책이 아니다.
탈무드를 읽는 여자에 관한 책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탈무드를 드는 여자의 ‘읽는’ 이야기.

 

 

 

 

 

당시 하루를 버티기도 버거운 판에 바빌로니아 탈무드 통독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총 6부, 37권의 주석집, 약 2,700장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닌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봤다. 나아간다는 것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고, 한 장씩 읽어나가는 게 그 방법일 듯 했다.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곧 주석집 한 권을 다 읽게 되리라. 이것은 시간을 나이 드는 흔적으로 보지 않고 지혜를 키울 기회로 보는 관점이었다. 그러니 시간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이었다. 매일 한 장씩 익히면, 하루 더 나이 들었다고 체념하는 대신 하루 더 지혜로워졌다고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결국 이것이 유대인이 시간을 보는 관점임을 깨달았다. (p.012)

 

 

 

 

 

 소설가 매들린 렝글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처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리처드 도킨스나 내 십대 제자들을 만족시킬 만큼 신이 존재한다고 증명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왜 신의 계명 하나하나가 날 더 나은 인간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지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신을 경외하고 토라를 공부하는 삶이 나를 풍요롭게 하고 이해를 도와준다. 생의 가장 기쁘고 경이로운 순간들 속에서 신이 없는 세상은 상상되지 않는다. 이 정도 믿음이면 내세에 자리를 얻기에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매일 새롭게 신의 자리를 만들려는 마음을 내기에는 충분하다. (p.245)

 

 

가장 중요한 유대 율법서이자 지식의 정점으로 불리는 탈무드. 이 책에는 탈무드를 읽는 여자가 전하는 7년 반의 기록이 담겨있다. 폴과 결혼하자마자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 폴을 사랑해서 그를 따라 뉴욕의 직장과 친지들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으로 향했지만 그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아 끝이 났다. 사랑은 땅에서 뗏장이 벗겨지듯 완전히 뿌리채 뽑혀 버렸고 그들은 인연을 끊었다. 사랑도 잃고 서있을 땅조차 없었던 그녀에게 운명같이 다가온 탈무드.

그녀가 탈무드 공부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 친구 안드레아와 둘이 언덕을 달리던 중 안드레아가 하루 한 장씩 탈무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평소 술집 순례, 문고판 스릴러 소설, 멋부리기에 몰두하던 친구가 세세한 유대 율법을 복잡하게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탈무드를 읽는다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루 한 장씩 읽으면 7년 반 후에나 다 읽게 된다는데 그녀는 왜 그런 고생을 자처하는 걸까? 도전의 짜릿함? 불가능한 목표를 정해서 천천히 실현하는 재미? 오후 7시쯤 조깅을 마치고 헤어졌지만 안드레아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장 7년 반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어떤 기분일까? 7년 반 후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전히 이스라엘에 살까? 가슴에 쌓인 고통과 수치심을 여전히 느끼려나? 다들 장담하듯 시간이 약이 되서 거기서 벗어나 있을까? 7년 반 후에도 여전히 슬픔에 젖은 자신을 상상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렇듯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판에 탈무드 통독이라니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 나아간다는 것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고, 한 장씩 읽어나가는 게 그 방법일 듯 했다. 이것은 시간을 나이 드는 흔적으로 보지 않고 지혜를 키울 기회로 보는 관점이었다. 모든 게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던 그녀는 의지할 게 필요했고 그 깨달음을 계기로 탈무드를 한 장씩 읽고 다프 요미를 하면서 탈무드의 풍부한 논제와 토론의 구조를 익혀나갔다.


그녀는 하루에 한 장씩 ‘오늘이 유대력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매일을 소중히 살아간다. 이혼 후 상실감, 고독, 외로움을 이겨내고 남성의 소유물에서 벗어나 스스로 당당히 홀로 서기까지 그녀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혼을 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탈무드는 언제나 그녀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탈무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다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탈무드 속에서 발견한 진정한 삶의 가치 그리고 지혜. 이것은 그녀 자신의 이야기지만 어찌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그녀의 진심 어린 외침이다. 한 챕처 한 챕터 그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탈무드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며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며 아픔을 딛고 일어나 당당히 세상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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