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 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 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p.75)

 

사물이란,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이제 그는 그것을 알았다. 한번 날린 주먹은 거두어들일 수 없다. 한번 뱉은 말은 도로 삼킬 수 없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듯,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듯, 계속 살아갈 수는 있다. 그걸 다 잊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깊은 핵은 잊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우리가 영원히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p.352)

 

삶의 슬픔. 그것은 그가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또 다른 난제였다. 어느 것이 올바른-또는 더 올바른-공식이었을까. ‘인생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니면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어느 것이라고는 결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랑은 그에게는 완전한 재난이었다. (p.368)

 

대학 첫 해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폴은 못 이긴 척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테니스클럽에 가입하게 되고 임시 회원이 되고 나서 얼마 후 추첨식 혼합복식 대회가 열리면서 자신의 파트너로 수전 매클라우드를 만난다. 얼마 후 폴은 자신감 넘치고 위트 가득한 그녀에게 급속도로 빠져 버리고, 수전 또한 그런 그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그녀는 폴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고 이미 결혼도 했으며 그의 나이 또래의 두 딸도 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이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수전의 남편이 그녀에게 수시로 폭력을 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그곳에서 구하고자 수전이 모아둔 자금으로 함께 가족을 떠나 런던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수전은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알코올 중독에 빠져 버리고, 폴은 자신과 함께하면서도 점점 더 고통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그녀를 지켜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이 존재한다. 둘이 함께라서 너무나 행복한 사랑,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기만 한 사랑,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슬픈 사랑 등 이렇게나 많은 사랑 이야기 속에서 사랑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은 두 배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연인의 사랑 이야기로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시선으로, 한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을 회상하며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이별에 이르기까지 연애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담아낸다. 때론 강렬하게, 때론 냉철하게 열심히 사랑하고 또 그만큼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끝나버린 그들의 사랑. 이 사랑 이야기는 내가 그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랑 이야기여서 읽는 내내 특별했고 또 그만큼 낯설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고 아프게 끝나버릴 사랑이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두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남자 한 사람만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그들의 사랑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고독감과 상실감 그리고 아픔이 절절히 전해져와 괜시리 가슴이 더 미어진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테지  너무나 강렬했고 또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사랑이라 책을 덮고 나서도 쉬이 그 여운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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