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허난설헌 시선집
나태주 옮김, 혜강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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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그리며」

자줏빛 퉁소 소리 붉은 구름 흩어지니
주렴 밖 찬 서릿발 우지짖는 앵무새
깊은 밤 비단 휘장 비추는 그윽한 촛불
때때로 성긴 별이 은하수 건너는 것 바라보아요,

또르륵 물시계 소리 서풍에 묻어오고
이슬 맺힌 오동나무 저녁 벌레 우는데
명주 수건으로 훔치는 깊은 밤의 눈물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지요. (p.46)

 

「느낀대로」

창가에 놓아둔 난초 화분
난초꽃 벙글어 행기 그윽했는데
건듯 가을바람 불어와
서리 맞은 듯 그만 시들었어요.

어여쁜 모습 비록 시들었지만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난초의 향기.
마치도 시든 난초가 나인 듯 싶어
흐르는 눈물 옷소매로 닦아요. (p.76)

 

 

「마음에 있는 말 7」

멀리서 나를 찾아오신 손님
당신이 보내오신 잉어 한 쌍을 주셨어요.
무엇이 들어있나 배를 갈라보았더니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들었지 뭐에요.

첫 말씀을 ‘늘 보고 싶다’ 쓰셨고요
그다음은 ‘잘 있느냐’ 물으셨네요.
편지를 읽어가며 당신 뜻 알고는
눈물이 흘러서 옷자락을 적셨어요. (p.123)

 

 

시인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여성 시인이었다. 그 시대에 주목할 만한 여성 시인으로는 이매창, 황진이, 홍랑, 이옥봉 같은 분들이 있었으나 앞의 세 분은 기생 출신이었고, 이옥봉 한 분만 허난설헌과 더불어 사대부집 부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여성 시인들 가운데 시 작품의 편수로나 품격의 높이로 발군의 시인은 허난설헌이었다. 마음이 간질거리다가도 이내 아프도록 한스러운 그녀의 작품에는 여인네의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 있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인 지금에 읽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적이다. 그밖에도 자신이 속한 양반의 삶과 다른 장사꾼의 삶을 읊기도 하고 출정하는 병사들의 기백을 노래하는 등 다양한 모습의 삶을 고스란히 시로 담아냈다.  

이 책의 편역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나태주 시인이 맡았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허난설헌의 작품을 고르고  골라 오늘의 말로 옮겼다. 덕분에 기존의 허난설헌 시집에 비해 훨씬 더 친근하고 쉽게 읽혀진다. 또 한쪽 페이지를 시를 닮은 한 폭의 그림으로 꾸며 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한 편 한 편에 담긴 그녀의 인생 그리고 열정, 빼어난 글 재주를 가졌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탓에 그 능력을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그녀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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