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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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그냥 일하러 왔어요. 당신의 그 웃기지도 않은 성적 대상 선정의 장에 나를 멋대로 끌어들어서는 아줌마는 안 되겠다느니 뭐니 생각한다면 불쾌하고 불편하니까 그만 둘래요? ‘당연히 괜찮지요’라니 뭐가 괜찮아? 그게 위로랍시고 하는 소리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그래, 나는 아직 괜찮구나. 다행이다’ 하고 기뻐할 줄 알았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당신이 나를 감정해줄 필요없어요.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내가 정하니까. (p.71) 

 

 

어려서부터 운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유산 사실을 알았을 때도, 새까만 피를 봤을 때도. 언제나, 히로키 앞에서도 나 혼자 있을 때도 늘 그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울지 않아야 강한 것이라고 믿었다. 감정을 무턱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어른의 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이런 오기는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도. (p.193)

 

보통의 행복한 인생. 그런 것은 없다.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아니다. 제각각 사정이 다르다. (p.214)

 

 

책은 ‘여성에게 진정한 우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저자가 이에 반문하며 쓴 소설로, 이웃 사촌인 유미코와 카에데의 삶을 중심으로 나이들어 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른아홉 살의 유미코는 얼마전까지 계약직 사원이었는데 계약이 끝나 현재 무직이고, 남편과는 별거 중으로 이혼을 하고 싶지만 남편이 갑자기 행방을 감춰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관련 절차를 밟을 수가 없다. 찾으려 했지만 실마리 조차 없었고, 시간이 지나고 자기 인생을 챙기느라 그 걱정까지 할 여유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실종 중인 남자와 여전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러모로 복잡한 사정을 떠안은 여자다. 그와 반대로 마흔한 살의 카에데는 만 오 년간 사무원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오늘 퇴직하여 내일부터 무직, 이 사람이다 싶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삼 개월에 한 번씩 애인을 갈아치우며 많은 남자들을 만나지만 정작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해 그대로 떠나보내고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쉬운 상대라 여기며 성추행과 스토킹을 일삼는 직장 상사들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협박성 문자를 보내오던 전 직장의 상사가 카에데의 집으로 찾아오는 일이 생기고 이를 계기로 둘은 휴식도 취하고 기분 전환도 할겸 유미코의 남편을 찾으러 그를 보았다는 작고 먼 섬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들의 우정은 평범해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옆에서 길을 함께 걷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면서도 절대 서로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그제서야 적절한 도움을 주는 식으로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것도 아닌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우정을 키워나간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틀에서 살짝 벗어나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 가는 두 사람. 가까웠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이들의 관계를 바라보며 진실한 우정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본다. 그 사람을 위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되고 불의를 보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고 상대가 도움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는 이들의 우정.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다”는 말처럼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오랫동안 숨겨온 것은 아닌지, 책을 읽다보면 알겠지만 이 두사람의 삶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묵묵히 인내하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반면에 이들이 대처하는 자세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 주위의 수근거림에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와 달리 이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나간다. 그래서 좋았다. 처해져 있는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의지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괜히 덩달아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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