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8.9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유난히도 길었던 이번 여름, 빨리 이 더위가 잦아들기를 바라며 기다리다 샘터 표지에서 가을을 먼저 만났다. 9월에 걸맞게 가을옷으로 갈아 입은 샘터, 가게 앞을 지키고 선 감나무의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니 이제 진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려나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이 뭍어난다. 이번 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마음이 설레였다.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게 없다던데 샘터는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여러 이야기들로 다채롭게 꾸며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달에 만난 사람 / 정영한 ‘최소의 집’으로 풀어보는 즐거운 숙제

 

오랜 시간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를 고민하던 건축가 정영한은 지난 2013년부터 서른 명의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최소의 집’이란 장기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말 여덟번째 전시를 마친 그에겐 그 만큼의 새로운 해법이 쌓였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좋은 집에 대한 시대적 정의도 달라진다. 그 필요성을 예측해 새로운 주거 모델을 선보이는 것이 그가 하고 싶은 일이다.

건축가 정한영은 오래 전부터 집이라는 주거공간에 대해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건축가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에게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어떤 대답을 내놓게 될까. 정영한이 던지는 질문의 핵심은 ‘그 집이 정말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인가’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조건은 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능적으로 무리 없이 뒷받침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야 한다. 재산 가치로 평가되거나 사용자의 취향과 상관없이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요즘, 어떻게 하면 소유하는 집이 아니라 소유자를 위해 존재하는 집을 집을 수 있을까 좋은 집을 짓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열정이 가득하다.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처음부터 완벽한 집은 없다며 건축가가 남겨 놓은 미완의 영역을 완성하는 건 거기 살게 된 사람들이라는 건축가 정영한.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집, 사용자가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생각하는 집, 그가 말하는 최소의 집을 통해 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인해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것 같다.

 

 

 

 

 

특집 가족보다 끈끈한 한 지붕 인연

 

이번달 특집에서는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한 지붕 아래 같이 살다 보니 가족만큼 정이 든 인연들을 소개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족의 간섭이 싫어 들어간 기숙사에서 만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끈끈한 형제애를 이어가는 친형제 같은 친구들, 낯선 곳으로 이사온 자신을 친정 엄마처럼 알뜰히 챙겨주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앞집 아주머니, 든든한 이웃사촌 윗집 할아버지, 대학 4년 동안 친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절친한 대학 동기,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마흔 명의 셋째들 등 읽다보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훈훈한 이야기들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新명문가의 조건 책 읽는 집안의 가정 교육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세상을 움직이는 인재치고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이덕무가 쓴 <사소절>의 한 구절을 참고해도 좋다. “어린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줄 때에는 그 아이가 아무리 둔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

자천타천 조선시대 최고의 독서왕으로 회자되는 아정 이덕무. 박학다식한데다 개성있는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서출 신분이었지만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늘 책을 끼고 사는 서생이었다. 이덕무는 왜 자기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고 말할 정도로 책벌레가 되었을까. 이유는 ‘가난’과 ‘결핍’ 때문이었다. 돈벌이를 자주 집을 비우던 아버지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먼길을 떠날까 걱정돼 옷깃을 손에 쥐고 안절부절못했다. 아버지가 길을 떠나면 그 그리움의 틈새를 메꿔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책이었다. 애초에 이덕무는 벼슬길에 나갈 수도 없는 서자라 그런 환경이라면 보통은 주눅이 들고 움츠러들기 마련이지만 책은 그에게 구원이며 등불이었다. 책에 파묻혀 있는 동안만은 가난과 허기로 얼룩진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했지만 늘 책을 놓지 않았던 이덕무는 결국 정조에게 발탁되어 검서관의 벼슬을 시작했고, 실학자로 이름을 얻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기 힘든 요즘, 일 년동안 책 한 권 읽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간다는데 우리 아들은 그와 반대로 책이랑 너무 친했다. 오히려 정신없이 책을 보느라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날 정도. 어느 순간부턴가 무섭게 책에 빠져들더니 그 결과 올해 포함 3년 연속으로 독서상을 받아와 가족들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요즘은 게임에 빠져들어 책보다 스마트폰 게임을 더 가까이 하는 아들. 그리하여 예전보다 책을 보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책을 아예 손에서 놓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가 다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이 남자가 사는 법 / 문성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에이스 

 

코트 위에서 그가 흘린 감격의 눈물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로지 배구에만 열중해 얻은 소중한 결실이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가 가슴 속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평정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누가 뭐라 말하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의연함이 그가 갖고 있는 과묵함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남자배구 국가대표로 출전한 문성민 선수. 그는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이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의 소유자로 평소에는 담담한 얼굴로 일관하는 그지만 코트에만 서면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특점에 성공하면 팀 선수들과 둘러서서 환호하며 기쁨을 나누고, 선수들과 약속했던 세리모니와 다른 동작을 취하는 장난기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 앞에서 울지 않는다는 그가 코트에서 만큼은 뜨거운 눈물을 참지 않고 쏟아낸다. 2010년 입단 이래 지금까지 거의 매년 국내 남자 배구선수 득점 순위 3위 안에 오르는 에이스로서 시속 123킬로미터 속도로 내리꽂는 스파이크 서브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상대팀을 제압하는 그의 전매특허. 198센티미터의 장신을 앞세운 철벽 블로킹과 대포알 서브로 그는 매번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인다. 시기적절하게 지금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는 중에 접해 어느 때보다 더 뜻깊게 다가온 이번 기사. 남자대표팀에 선발된 선수 중 유일하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경험해 본 문성민 선수는 지금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에 앞서 한 인터뷰에서 “그 때는 선배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라며 “지금은 내가 선배가 되어 아시안게임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대만과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한 우리나라 선수들, 막내에서 맏형이 되어 출전하는 아시안게임. 승부에 연연해하며 부담갖지 말고 그동안 열심히 훈련한 만큼 경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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