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없이 살자
김하원 지음 / 자화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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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싸웠다. 좋아하는 감정은 있는데 계속 삐끄덕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점도 너무 많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분명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친밀감보다는 자기 조국의 사상을 위해 싸우러 나온 전사의 모습이었다. 인신공격의 치졸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는 악화되었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풀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p.25)

 

 

세계 여행은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바꿀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매 순간이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부딪히고 깨질 때는 아팠다. 그러나 더 아름답게 빚어지기 위해서는 깨져야 했다. 쥐고 있던 내 모습을 내려놓자 신기하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으로 하나둘씩 경험해나가니 성취감도 느꼈다. 다른 것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긍정의 에너지가 선순환이 되어 돌고 있었다. 계기가 없어서 실패가 두려워서 하고 싶지 않을 뿐 못하는 게 아니었다. 여행 전 나를 두렵게 했던 고산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에 저장되고 있었다. 난 조금씩 단단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P.81)

 

 

결혼해도 외로울 때가 있다. 혼자여도 물론 그럴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지지고 볶아도 둘이 사는 게 낫다고 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부부가 안 맞으면 더 외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게 더 외롭다고 말할 순 없다. 인생이 원래 외롭기 때문이다. 둘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기대감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았다. 외로움은 인간과 영원히 함께 할 친구일지도 모른다. (P.190)

 

호텔 근무 시절 같은 부서 선배와 1년간의 연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남편과의 성격 차이와 소심한 성향으로 인해 스트레스성 어지럼증과 불안장애가 생겼고, 원하던 아이도 생기지 않자 부부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성격에 싸움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신랑은 동굴 파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모든 불행의 원인을 남편 탓으로 돌리며 서로 미워하는 마음만 커져갔다. 저자가 방황하는 사이 남편도 같은 위기감을 느꼈고, 안되겠다 싶었던지 둘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남편이 던진 비장의 카드는 세계 여행. 그러나 저질 체력에 비행공포증이 있는 그녀에겐 폭탄선언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결국 운명은 남편의 의지대로 흘러가고 그렇게 부부는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여행. 1년의 비행을 통해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며 재정비하고 돌아온 그녀는 세계 여행이 고통스런 훈련이자 성장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단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서투를 뿐이었고,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깨우치며 배우고 있었다. 1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30개국 120개 도시를 여행하며 그 시간들이 그녀를 조금씩 단단하고, 둥글게 만들었다.

 

 

 


수억 인구의 생김새가 다르듯
모든 부부의 사는 모습도 다른 것이 정상인데
마치 모범답안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주변의 다른 부부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됐다.
부부마다 살아가는 모습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P.207)

 

 

 

책은 아이 없이 둘만의 삶을 꾸리기로 한 한 부부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유대감을 세계 여행을 통해 만들어나가기로 하면서 겪은 일들을 적은 것으로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택한 다른 커플과는 사뭇 다른 면을 보여준다. 아이를 원했으나 원처럼 되지 않았던 과정, 결혼하며 오히려 더 외로웠던 시간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망찬 결혼 생활과 둘만의 삶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실제로 일어날 법한 진짜 갈등들을 책에 담으며 저자는 세계 여행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1년 동안 오로지 함께한다는 그 사실은, 그간 쌓아왔던 앙금이나 오해, 갈등을 차분히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붙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상대의 좋은 면도, 또 나쁜 면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처음으로 지친 내 자신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P.43)

 


 

내가 꿈꾼 결혼은 분명 이게 아니었는데, 행복하지 않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한 결혼생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우리 부부와 그 모습이 겹쳐진다. 우리도 처음에는 티격태격 많이도 다투었다, 연애하면서는 너무나 잘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제껏 자라난 환경이 너무나도 다른데 단번에 서로의 합이 맞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 서로의 단점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저 나와 다를 뿐이다. 다른 생각을 덧대지 않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한다. 둘이 반드시 하나가 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 부부란 그런 게 아닐까? 지금처럼 같이 평생 오래오래 사이 좋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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