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
아널드 홀테인 지음, 성립 그림, 서영찬 옮김 / 프로젝트A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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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걷기의 진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물이 없다는 데 있다. 시골로 여행을 떠나기 전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은 완전한 정신적 진공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산책자가 주어진 시간과 장소라는 카테고리마저 없애버려야 한다. 일정한 시간 안에 일정한 거리를 돌파하겠다는 결심을 갖고 출발하는 것은 산책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산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건강을 위한 산보는 시골 산책의 낙제생인 셈이다. (p.13) 

 

저자가 말하는 산책자가 갖춰야 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은 흔들림 없이 완벽한 수동적 자세다. 이는 곧 어떤 느낌도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적 태도.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그냥 내맡기겠다는 태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로지 마음을 비우고 걷기 자체만을 생각하고 걸었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라던가 살을 빼기 위해서라던가 항상 이유을 두고 걸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그 목적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 앞만 내다보고 걸었다. 그래서 주위 풍경을 잘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렇게 아둥바둥거렸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종종 걸음으로 속도를 내보기도 했다. 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별들이 쏟아졌다. 먼지 나는 길도, 굴뚝 연기도 없는 청아한 북쪽 대기 속에서 별들은 세상 어느 곳보다 밝게 빛났다. 머리 위에서 찬란히 빛나는 반점이 실제 은하수인지 아니면 별빛을 받은 구름인지 분간하려면 그 모양을 유심히 관찰해야 했다. 모양이 변한다면 구름일 테니까. 구름은 아니었다. 은하수의 별들이었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가깝게 느껴져 마치 무한계로 거대한 관문이 열린 것만 같았다. (p.59)

 

자연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감정과 감각에 이토록 깊이 호소하는 것은 복잡하고 심오한 수수께끼다. 자연미는 외형적 속성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느끼는 영혼 안에, 생각하는 정신 안에, 회상하는 기억 안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영혼, 정신, 기억에 황홀경과 들뜬 느낌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사랑의 경주를 유지, 전파, 고양하는 것도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 다양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p.145)

 

걷기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을 강화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눈에 마주치는 수천 가지 자연 현상을 기술할 수 있는 자질이다. 그밖엔 없다. 마음속에서 자질구레한 근심거리를 재빨리 내쫓을 수 있는 것으로 몰입 같은 자질만한 것은 없다. 몰입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법이다. (p.167)

 

책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살았던 인문학자, 아널드 홀테인이 걷기를 통해 얻게 된 자연에 대한 성찰을 담은 놓은 책으로 인도에서부터 캐나다, 영국 그리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생사를 이야기 한다. 우리가 자연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자연이 왜 감탄스러운지, 인간은 왜 겸허해야 하는지 등을 일깨워준다. 그 당시 사람들은 걷기 그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걷기는 모두에게 일상이며, 노동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여가를 위한 행위가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시골 산책을 즐기며 그 묘미를 제대로 알아차렸다. 그는 두 발로 시골 마을을 가로지르며 사색을 일삼고, 자연 속에서 걷기가 주는 묘미를 곱씹었다. 그는 걷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고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여행이나 운동이 목적이 아닌 ‘걷기를 위한 걷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걷기를 재발견한 인물이다.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류의 원시적 거주지로써 원시적 유대의 기억을 품어 왔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물이나 색깔을 볼 때보다 특정한 풍경을 볼 때 감정이 더 동하는 까닭은 그 풍경이 조상이나 개인의 기억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유대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감탄, 존경,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에게 보는 눈과 이해하는 마음만 선사하면 자연은 자연이 보유한 선물을 아낌없이 베푼다. 그래서 저자는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걷는다. 날씨가 덥거나 추워도 상관없다. 그저 눈 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과 마주하며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나는 것, 모두를 그러모은다. 저자는 걷는 동안 그 시간들을 마음껏 즐긴다. 삶을 즐기지 않는다면 걷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저자에겐 걷기 그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고 휴식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걷고 싶어진다.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온갖 생각들은 비워내고 자연에만 집중하면서 말이다. 왜 저자가 걷기를 예찬하는지 알겠다. 걷기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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