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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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너그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표정은 너무 풍부해서
어떤 언어로 해석하든 해석될 수 있고,
어떤 의미 부여든 가능해서 누군가의 의미를 독점하기도 쉽다.
당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권위는 오직 당신에게만 있다.

 

 

 

 

 

채식을 한다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힘을 보내지 않으려고 고기를 안 먹는다. 서툴러도 채식주의자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덜 가해할 수 있도록. (p.28)

한 달에 몇 번 쓰는 글과 근근이 파는 그림 몇 점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저자.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빈곤할 것 같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출근하지 않으니 교통비가 안 들고, 가구와 옷이 적어서 유지비가 적게 들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식비도 줄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한 지 3년, 매일 한 끼 이상 고기를 먹던 저자가 어떻게 고기를 안 먹게 된 걸까? 어느 날 버스 옆 차선에서 트럭에 가득 실린 돼지 중 한 마리와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라고 한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저 존재를 어떻게 먹기 위해 죽일 수 있는지 자신의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채식을 시작한 그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염려하거나 반박하거나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난처해진다.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오히려 반박하고 눈치를 주며 지나치게 그의 삶을 간섭하려든다.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의 자유이고 권리인데, 타인의 삶에 너무 넓은 오지랖을 펼쳐댄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흰색 페인트로 덧칠한 높은 건물에서 나와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발바닥에 붙은 고무창에 의지해 바쁘게 지나다니는 걸음을 보면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아픈 속살을 가리려고 색색의 겉옷을 입는 것인지도. ‘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을까.’ 아파야 정상일 법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나약함을 건드리고 싶다. 건물의 뿌리로 추락해 다 같이 길을 잃고 싶다. 추락은 소란을 일으키고 땅에 균열을 낸다. 밑바닥에서 뚫고 나오는 에너지다. 더 크게 울면서, 팅팅 부은 눈으로 능청스럽게 말 걸기로 한다. (p.88)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무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무지. 나는 나를 모르듯 당신을 모른다. 삶이 뭔지 세상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p.152)

 

 

 

 

 

 

 

 

인간이 함부로 타인의 삶을 지레짐작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혐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건 인간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무기력함이 밀려와 풀썩 힘이 풀렸다. 친구의 따뜻한 손을 떠올렸다. 친구는 다시 곧 만나자며 두 손을 잡아줬다. 어떤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고, 어떤 존재라고 규정할 수 없는 따뜻한 손. 친구가 나를 잘 모르듯, 나는 친구를 잘 모른다. 나는 친구를 안다고 말할 자격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누구나 그렇다, 그래야 한다. (p.171)

 

그래서 삶을 쓴다. 삶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써도 자꾸 무엇으로 환원된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상처가 많아서 감정적인 무엇으로 진단된다. 무례한 스티커가 남발한다. 더럽고 위험한 스티커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 대상은 이름만 바꿔서 세상을 우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더는 나와 당신이 그 유령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령을 말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말해주길. 구체적인 오늘을 나눠주길. 나도 오늘을 말할테니. (p.223)

 


권력 풍자 퍼포먼스와 그라피티, 비독점 다자연애, 영페미니스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거리 예술가 홍승희의 신작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세상에 의해 제멋대로 편집되지 않기 위해 쓰고 그리는 거리 예술가 홍승희. 그녀는 국가권력을 풍자하는 그라피티를 그리고 세월호 애도 퍼포먼스를 하며 영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로서 대학에서 성별 이분법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는 등 말마다 활동마다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발언과 활동은 최선의 윤리가 있다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숨 쉬기 위한 노력이다. 책에서는 그런 그녀가 정해진 길보다 기꺼이 불확실하고 무한한 세계를 선택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식물> <오도라> <개미> 등 그녀가 직접 그린 12점의 유화와 함께 세상이 정해주는 역할극을 거부하며 고민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일상과 내면, 권력 풍자 그라피티와 퍼포먼스 이후 겪은 일들이 담겨있다.

읽고 나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집단자살. 이웃인 일본에서 지진이 그렇게 번번히 일어나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진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었다. 영화 <판도라>를 보면서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영화관 안에 있는데도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영화가 너무 무서웠다. 분명 언제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진을 직접 경험한 후로 그 공포는 극에 달했다.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언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진으로 받은 충격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원전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사그라들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선택일까. 저자의 말대로 이건 집단자살이라 다름없다. 우리는 언제나 죽을지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나약한 존재들. 누가 되었든 간에 우리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지금은 괜찮아졌다지만 어느 누구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파도 참아야 하고 슬퍼도 참아야 하는 어찌보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감추는 것에 더 익숙해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랑색이라 정해진 색깔, 남자는 무조건 울지 않아야 하고 씩씩해야하며 여자를 보호해야하고 여자는 나약한 존재라는 고정관념.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누가 그렇게 딱히 정해둔 것도 아닌데 우리 사회는 당연하듯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자라난 우리들은 또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수가 옳다고 한들 꼭 소수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실감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아는 지식이라고는 쥐꼬리만큼이라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가진 것이 없어 교도소를 오가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삐딱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멋져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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