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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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p.24)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경애 발밑으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앞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p.57)

 

 

미유 말대로 그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었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p.59)

 

 

경애는 비행과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7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들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경애를 아예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화재의 전말이었다. 발화지점은 건물 지하였고 불이 번지기까지 분명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많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한 호프집 사장이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라고 신문에서 읽는 순간, 경애는 아주 차가운 무언가가 와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것 같았다. 몸체가 아주 크고 체온이 아주 낮은 그것이 마치 등에 업히듯 자신에게 와서 붙은 것만 같았다. 그것이 팔을 벌려 경애의 머리와 눈과 입술과 마침내 심장까지 완전히 장악했다. 이를테면 정말 누군가 잘못 만든 어떤 피조물 같은 것이. (p.68-9)

 

 

 

경애는 스스로의 삶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발끝에서 무언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애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산주를 생각하면 어떤 간절함이 들면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경애를 붙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경애는 예감하고 있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떠나야 한다고, 어디든. (p.132)

 

 

마음을 페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p.172)

 

 

 

상수는 반도미싱의 직원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는 했지만 융통성이 부족한 탓에 한국의 공장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신입 시절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열혈적으로 밤잠도 자지 않고 미싱 카탈로그를 차에 싣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이렇다 할 영업 성과도 없고 사고만 일으켜 그야 말로 골칫거리였다. 회사에 이익이 되기는 커녕 사고만 치는 상수지만 회사의 간부들은 아무도 그를 선뜻 자르지 못했다. 그 이유인즉 상수의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인데다, 회장의 재수학원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낙하산인데 막상 입사하자 회장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끈이 다 떨어져버린 낙하산이었다.그 결과 상수는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팀장 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 채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리라는 이상한 꼬리가 붙었대도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 상수는 부장에게 팀원을 배정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근 한 달만에 얻게 된 팀원이 8년차 총무부 직원 박경애였다.

겉으로 보면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은총이 공통되어 있었다. 상수의 유일한 친구인 은총이 1999년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애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 아이가 바로 경애였던 것. 이를 먼저 알아챈 이는 상수였다. 상수는 은총에 관한 이야기를 경애와 자연스럽게 나누고 걔가 얼마나 경애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회상하고 싶다가도 경애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며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면 너무 아픈 상처와 연관되어 있기에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상수가 아는 경애는 그 기억의 어느 하나도 허투루 미뤄두지 못했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같은 사고 현장에서 단 한명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수. 화재가 일어난 그 골목은 그런 비극이 일어날 것 같은 공간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때론 학생들이 모여 신분증 검사도 없이 맥주를 마시고 다시 흩어지는 그런 번화가의 골목이었다. 축제가 열렸던 그 날에 학교에서도 영화반을 했던 E는 자기가 촬영한 단편 영화를 튼다며 영화동호회 사람들을 초대했다. 모두가 모여 웃고 떠드는 그 때 경애는 전화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돌아왔을 땐 이미 2층의 호프집으로 가는 좁은 통로에 연기가 자욱했다. 신고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던 경애는 다시 공중전화로 뛰어갔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땐 이미 소방차와 경찰차가 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 잠깐 사이에 건물 밖까지 시뻘건 불길이 넘실댔다.

연기에 질식하고 다치고 친구들을 잃은 것은 그들인데 화재가 일어나자 모두들 아이들에게 죄를 먼저 묻는다. 왜 그 자리에 있었냐고.
아이들을 다그쳐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고 보호했어야 할 그들이 아니었던가. 일말의 죄책감이나 후회 없이 고통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추모하기는 커녕 오히려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헐뜯고 비난한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원망해야 할까, 아니면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문을 잠그고 자기만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산 사장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돈을 받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편의를 봐주고 잘못된 일을 눈감아 주던 경찰을 탓해야 할까. 이 비극적인 일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그 날의 사고 이후 경애는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함없이 굴러가는 일상이 이물스럽게 느껴졌다. 불현듯 찾아와 경애를 무겁게 누르는 불안은 경애가 늘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다. 이는 상수도 마찬가지 1999년에,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은총을 잃은 일을 포함해서 상수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혼자 갇혀서 많은 의문에 답하고 있으면 다정한 이들의 죽음에 자기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이 상수를 묶었다.

눈 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아픈 상처를 내보이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온 경애 그리고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외면받고 먼 곳으로 쓸쓸히 떠나버린 어머니와 유일한 친구 은총의 죽음으로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상수에게는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와의 기억 그리고 추억은 생활 속 곳곳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간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고통속에서 아파하며 웅크리고 있던 이들이 마침내 스스로를 감싸고 있던 막을 조금씩 뚫고 나와 외면해오던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책이 가진 무게는 상당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그들의 삶이 안타까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이들 두 사람에게 그 사건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슬픔이었다. 누가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한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너무나 깊고 오래된 고통과 슬픔 속에서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모습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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