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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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내가 이 생각을 많이 했고, 오랫동안 곱씹었고, 그런데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자신이 없었다는 것, 하지만 그러다가 마침내, 네가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왠지 달라진 듯했다. 거의 간청하는 목소리였다. 마지막 요청의 절박함. 나는 의자에서 발을 내렸다.
“계속 이야기해봐.” 내가 말했다.
“나를 봐주면 좋겠어.” 그가 격하게 토해냈다.
“나를 봐주면, 정말로 봐주면, 그런 다음에 말해주면 좋겠어.”
“뭘 말해줘?”
“네가 본 걸.” (p.50)



나는 당신들한테 다른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는 걸 줄거야. 더럽혀지지 않은 거.
인생이야기. 그래, 그게 가장 훌륭한 이야기지. 난 그거 좋아해, 그거 좋아해. (p.99)



“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할 거야, 친구들, 이건 하느님한테 맹세코, 쇼에서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야기니까. 어떤 쇼에서도 말한 적 없고, 어떤 사람에게도 말한 적 없어. 그런데 오늘 밤에 드디어······” 그의 함박웃음이 커질수록, 얼굴은 점점 우울해진다. 그는 나를 보며 무기력하게 어깨를 으쓱한다. 그의 존재 전체가 자신이 곧 피할 수 없는 커다란, 그러나 참담한 도약을 할 것이라는 느낌을 전하고 있다. (p.108)



한 인간의 평생을 지배한 고통과 유머가 공존하는 희비극!

이스라엘의 도시 네타니아에 위치한 작은 클럽. 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무대에 오른다. 이름은 도발레 G. 오늘 쉰일곱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찢어진 청바지에 금색 클립이 달린 빨간 멜빵으로 멋을 부리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무대에 올라 여러 테이블에 앉은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스스로를 “웃음을 사는 매춘부”라 칭하며 주거니 받거니 그가 과장된 몸짓과 활기찬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내자 객석에서는 산발적인 웃음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오고 사람들은 여전히 왁자지껄 떠들며 클럽으로 줄지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 사이에는 누군가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다. 은퇴한 판사 아비샤르 라자르. 그는 어린 시절 도발레와 함께 과외 수업을 받으며 아주 잠시 우정을 나눴던 사이로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도발레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두 주 전쯤 도발레가 불쑥 전화를 걸어 오래 전에 있었던 것들을 일깨워주었고 자신의 쇼를 보러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그를 뿌리치지 못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도발레는 웃기는 농담으로 관객들을 조롱하며 공연을 이어간다. 그의 공연을 몇 번씩 봐왔던 사람들과 처음 온 사람들, 한때 그와 알고 지낸 사람들이 섞여 있는 관객은 처음에는 그의 농담과 조롱에 호응하며 즐거워 하지만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는 열네 살 때 갔던 군사 캠프와 그 후에 벌어진 개인사를 풀어놓기 시작하면서 공연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책은 도발레라는 이름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공연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어 공연이 끝나면 이야기도 끝이 난다. 작은 클럽 무대 위에 오른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G. 평소 관객들을 쥐었다폈다하며 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는 이 마지막 공연에서 평생 품고 살아온 고통의 근원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간 짖굳은 농담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그가 오늘 이 무대에서 그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꼭꼭 숨겨왔던 고통들을 내보이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홀로코스트에서 혼자 살아남아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심하게 괴롭히며 왕따시키는 또래의 아이들까지 누가 들어도 얼굴이 굳어질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주 담담히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들려준다. 확실히 우리와 정서라던가 문화가 달라 그의 유머에 쉽사리 웃음은 나지 않지만 그의 고통 앞에서는 모두가 한마음 일 것 같다. 그가 살아온 그 여정은 결코 누가 되었더라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의 공연을 기대하며 그를 보러 온 사람들은 평소와 같지 않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고통스러워하며 하나 둘 자리를 비워가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비추는 조명을 벗삼아 미친듯이 무대 위를 쏘다닌다. 마치 그 자신을 계속 앞으로 찔러대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의자가 그를 삼켜버릴 듯 도발레의 몸은 뼈밖에 남지 않아 앙상하고 볼 품 없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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