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헬렌은 훌륭한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기자로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그녀의 예리하고 매끄러운 비평도 정평이 나 있었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그분의 회고록과 요리책이었다. 저널리즘의 딱딱함을 벗어나 자유롭게 써내려간 그녀의 글에는 따스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모든 레시피와 이야기에는 마음을 울리는 진심이 있었다. (p.11)

음식과 글을 사랑하는 티아 먼로. 요리칼럼리스트를 꿈꾸는 그녀는 헬렌 란스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녀 때문에 뉴욕대의 음식학 석사 과정에 정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그녀의 밑에서 공부하길 바랬던 티아는 대학원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 입학 환영회에서 헬렌을 직접 만나 자신의 실력과 매력을 어필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정성껏 만든 드롭을 가지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눈 앞에서 그녀를 놓치고 익명으로 활동하는 비평가 《뉴욕타임스》레스토랑 평론가인 마이클 잘츠와 마주치게 된다. 빨리 그녀를 뒤쫓아 가야하는데 마이클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마이클은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이 헬렌하고 연결해주겠다고 지원서와 에세이를 보내라며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고는 떠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헬렌의 인턴십은 떨어지고 자신이 지원한 적도 없는 매디슨 파크 타번을 배정받아 고객 휴대품 관리를 맡게 된다. 일하는 첫 날, 티아는 그 곳에서 다시 마이클과 마주치게 되고 미각을 잃게 된 자신을 대신해 글을 써준다면 헬렌과 자신을 연결해주겠다는 그의 달콤한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그를 도와 같이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이클 잘츠는 내가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긴 했다. 가만히 앉아서 내 미래를 이대로 방관하고 있을 순 없었다. 여기 대학원까지 온 것은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 내게는 오랫동안 소망해온 것에  다가갈 힘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 손에 내 미래를 맡긴단 말인가?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낯선 사람과 뒷거래를 하면서 도움을 받는다는 게 결코 신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던 날들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여긴 뉴욕이다. 내가 세게 밀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밀리고 만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 (p.33)


어떤 것도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헬렌 사건을 통해 그걸 배웠다. 어떤 것을 너무 원하면 그 욕망이 말 그대로 이마에 네온사인처럼 새겨질 수도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바르게 살아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히 잘나지 않았고 모두가 원하는 그 상을 나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고 내가 그 상들을 원한다고 말만 하거나 가장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고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어떻게든 헤치고 나가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의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233)


​문득 《뉴욕타임스》 독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 리뷰를 읽으며 뛰어난 전문가의 신중한 리뷰를 읽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쓴 글일 뿐이다. 미각을 잃은 평론가와 메뉴의 3분의 1은 먹지 못하는 수제자. 내가 이 모든 걸 주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메뉴를 선택하고 리류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p.310)


이런 뒷거래가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눈 앞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티아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내미는 유혹의 손을 잡고 말았다. 처음에는 좋았다. 화려한 명품 옷, 눈이 휘둥그레지는 파인 다이닝, 잘생긴 웨이터들과 셰프들. 평소에는 맛보고 싶어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먹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이 일을 하면서 주어진 모든 것들은 티아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린 티아는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말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기에 그로 인해 거짓말은 늘어가고 자신의 정체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홀하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연인과도 헤어지고 유명 셰프에게 이용당했다. 대학원 생활을 망쳤고 더없이 좋은 기회였던 인턴십도 놓쳤다. 티아는 지금 이 상태의 삶이 계속되는 걸 상상해봤다. 일을 미루고 약속에 늦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티아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음악을 글로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듯 음식을 글로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음식도 아니고 외국의 음식인데다 형태도 맛도 모르는 음식을 설명하는 글을 보며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런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거침없이 음식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해낸다. <악마는 프라다를 압는다>가 미식 세계를 만났다는 표현은 매우 정확했다. 저자가 쉴세없이 늘어놓는 음식들은 먹어보지 않아도 꼭 먹어본 듯 마치 지금 내 입 안에 그 음식이 들어있기라도 한 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찌나 맛깔스럽게 표현해내는지 읽는 내내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건 당연지사! 기회가 된다면 그 맛을 꼭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저자는 다양한 음식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음식과 함께 잘 버무려진 이야기는 싱싱한 채소에 맛있는 양념이 더해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처럼 아주 일품이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페이지를 가졌음에도 정말 빠르게 읽혀진다.
티아를 통해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사회에 한 발 내딛은 티아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상황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부푼 꿈을 안고 처음 사회에 섰을 때의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모습을, 비록 나쁜 길에 빠져들었지만 수없이 고민하며 지금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본래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들에게도 다가오던 그 유혹의 손길을 어떻게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렀는지 지난 날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된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때 그 곳에서 다시 길을 찾아 나오기란 솔직히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선택한 삶이 나쁜 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비난하며 탓할 수 있을까.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 덤벼드는 사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만약 티아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쉽게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에 이끌려서가 아닌 스스로 당당하게 삶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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