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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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직하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라.

네가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이 너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네가 오늘 선을 행하더라도 내일이면 잊힐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네가 만든 것을 남들이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들어라.

결국에는 너와 하느님의 일이다. 너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다. (P.16)


 

​페테르와 미라는 행복하게 아침을 맞는다. 웃으며 아침을 맞는다. 그들이 나중에 이날을 떠올리면 그걸 기억할 테고 그랬던 그들을 증오할 것이다. 생애 가장 끔찍한 사건들은 한 가족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유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기 전에 휴가지에서 한 마지막 수영.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P.256)

 

마야는 이 정적이 물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너무 깊숙이 스며들도록 방치하면 얼어서 심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녀는 헤드의 경찰서에 앉아 있었을 때부터 자신이 이 사건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부모들의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으냐고 물으면 마야는 고개를 끄덕일테고, 모든 감정 중에서 죄책감이 가장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녀를 가장 사랑한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짓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P.325) 

 

쇠락한 작은 마을, 베어타운. 베어타운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날 만큼 넓은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점점 가망이 없어지고 있다.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와 더불어 인구도 줄고, 매 계절마다 숲이 폐가를 한두 채씩 집어삼킨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의 영광도 잊혀진 지 오래,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 소리가 들리면 미소를 짓는다. 탕, 탕, 탕. 기온만큼이나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집값 말고는 남은 게 없어 보여도 그렇게 단 하나의 희망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견딘다. 탕, 탕, 탕.

삼월 초의 그날 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이 곳은 주목할 만한 게 거의 없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하키 타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의 주민들은 이 젊은 친구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건다.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청소년팀의 우승!

다른 데서는 그게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일대에서 최고의 청소년팀으로 등극하면 온 국민에게 이 도시의 존재를 다시 일깨울 수 있다. 그러면 정부에서도 헤드가 아니라 여기에 하키 스쿨을 설립할 테고, 그러면 이 주변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대도시가 아니라 베어타운으로 몰려들 것이다. 여기서 나고 자란 선수들로 이루어진 A팀이 또 다시 1부 리그에 진입하면 대규모 후원사에서 관심을 보일 테고, 의회에서는 새로운 아이스링크와 넓은 도로는 물론, 어쩌면 오래전부터 얘기하던 컴퍼런스 센터와 쇼핑몰까지 건설할지 모른다. 그러면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서 주민들이 집을 팔기보다 깨끗하게 보수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하키 시합이 중요한 이유는 이 도시의 경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어타운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에이스인 케빈이 하키팀의 단장 페테르의 딸 마야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때도 그 사실에 분노하기보다는 결승전을 앞두고 이 사단을 벌인 그들을 탓하며 원망한다. 


 

「오베라는 남자」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감동소설의 대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새로운 이야기 <베어타운>으로 돌아왔다. 책은 이전 작품들에 웃음과 감동과는 또 다른 깊고도 뭉클한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사회와 너무나 닮아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끌어 가야 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지우고 그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의 스포츠는 단순히 아이들의 취미 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선과 악을 가려낼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여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어른들에게 악이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것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케빈이 마야에게 성폭행을 가했음에도 그를 비난하기는 커녕 지금 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그들을 탓하며 노골적으로 대놓고 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그들은 알아야 했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만약 우리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하고 한 번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했다. 그리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잠자코 사건의 진실여부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어야 했다. 무조건 적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야유를 퍼부을게 아니라.

마야가 진실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케빈은 마야에게 상처를 주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야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상처를 받고 있다. 비단 소설에서 뿐만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호 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까. 책에서든 현실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이들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이 너무 아쉽다.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들을 막무가네로 비난하며 주위 사람들을 선동해 야유하는 퍼붓는 그들에게서 그들의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것 인가. 결국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아무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들지 않는다. 그저 지나갈 뿐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수 없다. 그 과정이 어찌됐든 말이다.

말은 하잖은 것이지만 그 말 한마디가 지닌 힘은 위대하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는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책은 지어낸 소설에 불과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말할 수 없이 묵직하다. 이 내용을 긴 페이지에 걸쳐 담담하게 그려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자신을 걱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모를 다독이는 마야와 딸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 고통속에서 살아갈 그녀의 부모. ‘우리 아이들을 우리 손으로 지키지 못했어.’ 이 말이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린다. 부모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평생을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살아갈 것임을 알기에 실제 일어난 일도 아닌데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자라난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나아간다면 내 아이도 나를 뒤따라 그 길을 걸을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게 옳은 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일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용기있는 결단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하얀 눈 속에 파뭍히고 말았을 테지만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우리를 희망의 길로 이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이것이 아니었을까?  용기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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