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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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브라운관을 통해 남자의 사체가 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화염은 바닥에서 벽, 그리고 천장으로, 마치 생물이 번식하듯 퍼져나갔다. 이윽고 남자의 사체도 그 안에 휩싸였다. 화면에는 새하얀 불꽃이 일렁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눈을 떼지 못했다.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는 코드가 타서 화상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지켜봤다. 그녀는 브라운관 화상이 끊어지자 스위치를 조작해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았다. 네 명의 침입자가 사라지기 전까지로 돌린다.

감시카메라는 네 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현관과 저택 뒤쪽에 하나씩, 저택 안에는 1층 홀과 서재에 있다. 모두 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침입자들은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한 사람씩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영상을 찾아내 출력했다. 사진 네 장이 프린터를 통해 나왔다.

침입자는 남자 셋, 여자 하나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각각의 얼굴을 바라봤다. 남자 셋은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여자는 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주 오래전이었다. 그녀 자신은 아이였고, 상대 여자도 어린아이처럼 자그마한 체구였는데 나이는 그녀보다 열 살 정도 위였다.

새삼 네 명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이 자들이 그를 죽였다······. 죽이고, 불태웠다. (p.35)

 

 

 

야마나카 호의 별장지대에서 화염이 치솟은 것은 9월 10일 새벽이었다. 근처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남자가 신고를 했는데 처음 발견했을 당시 불길이 너무 거세서 근처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곧장 소방관이 출동해 진화에 나섰지만 완전히 붙은 불길을 잡을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고 얼마 후, 거의 다 타버린 집터에서는 성인으로 보이는 사체가 발견된다. 성별은 불명. 그 사체는 사건 조사를 위해 신속하게 넘겨지고, 부검결과 사체에서 발견된 탄환 두 발과 함께 이 사체가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단순 절도범의 소행일거라 생각했던 화재사건은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뒤이어 하나둘씩 기이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기 시작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시체는 보통 인간의 힘으로 죽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관절이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전 각자 종목에서 일본 신기록을 보유한 전 올림픽 스타들이 바로 그 저택으로 숨어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찾는 그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주인 센도 고레노리에게 발각되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날 밤, 그들 모르게 저택의 비밀 창고에서 감시 카메라로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190미터가 넘는 장신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육상 7종 경기 선수 타란툴라. 센도가 단련시킨 마지막 선수이자 가혹한 실험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빠르게 저장시키며 그의 복수를 위해 범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은 올림픽 시즌이면 논란이 되는 도핑을 소재로 삼아 인간의 욕망을 심도 깊게 다룬 작품으로, 과거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네 명의 스포츠스타와 괴물 타란툴라, 그들 모두를 뒤쫓는 경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주인공 타란툴라는 남편이자 스승인 센도 고레노리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병기로 집에 숨어든 네 명의 올림픽 스타들이 센도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그때부터 범인들을 쫓기 시작한다.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지만 타란툴라는 매번 그 사이를 유유히 피해 달아나고 자신의 행적을 숨기기는 커녕 범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간다. 저택 안에 누군가가 있었을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는 자신들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기척에 공포를 느끼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각자의 방법으로 그녀를 피해 달아나지만 어째서인지 매번 그녀는 그런 그들을 집요하게 쫒아오고 하나 둘씩 그녀의 손에서 싸늘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각자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그들. 그 당시 그들은 센도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만큼 그들의 욕망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고 결국 달콤하지만 독약과 다름없는 독배를 마셔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자신들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고 영광과 함께 그들을 화려한 세계로 이끌어 주었지만 한편으론 언제 그것이 밝혀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으로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했다. 힘겹게 얻은 돈과 명예 그리고 가정이 깨질까 두려워 결국 그들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읽는 독자는 이해는 하지만 당연히 옳지 못한 행동이고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게 정당화되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손에 쥐게 된 것들은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다름없었다.


내가 정말 매번 믿고 보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 한 번 빠져버리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처럼 작가님의 작품들은 독자들을 단숨에 책 앞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 센도의 손에 의해 탄생된 그녀가 네 명의 살인자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 복수를 펼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스릴이 넘쳐 흐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반전에 탄성을 자아낸다. 믿고보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래서 책을 한번 펼쳤다하면 단숨에 쉬지 않고 정주행하는 것은 기본이요. 한 번 그의 세계에 빠졌다하면 정말이지 답이 없다.  이 책은 이미 수년 전에 나왔던 책으로 이번에 개정하여 새로운 옷를 입고 출판되었는데 이 역시나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현재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이렇게 나와 코드가 맞는 작가님을 보면 어찌나 행복한지 밥 안먹어도 배부르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매번 기발한 아이디어로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아버리는 저자이기에 앞으로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너무나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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