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수진 작가는 장례 지도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것이 무슨 직업인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장례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책에서 장례 지도자로서 마주하게 된 우리 생에서 단 한 번뿐인 '죽음'에 대해 덤덤히 이야기한다. 짤막한 챕터로 이루어진 글인데, 우리가 유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특수하고 특별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묘사된 죽음이 너무 실제적이고 처참해서 좀 자극적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소설 속 죽음들은 굉장히 극단적이고 파괴적이지만, 플롯을 위해 파급력 있고 유기적으로 구성된 죽음이어서, 한편으론 굉장히 비현실적이며 환기하는 처참함과 두려움이 덜하다. 반면 이러한 죽음의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작가는 덤덤히 서술하지만 오히려 자극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 읽기가 좀 힘들었던 책. 하지만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엿볼 수 있고, 소명 의식을 갖고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라 하면,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경험, 상상과 사상이 책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적으로 옳다. 하지만 세상 모든 물건들이 그러하듯 '책'에도 엄연히 '물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굳이 생명과 비생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면, 이 '물성'이라는 것은 대상에 고유한 개성을 부여하여 마치 살아 숨 쉬는 무엇처럼 생명력을 지닌다. 그러니 우리가 '책'을 읽으며 책과 소통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이 글의 저자와 그의 생각들 뿐만 아니라, 지금 손 안에 있는 이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감각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수용하며 호흡한다.

『독일인의 전쟁』은 천여 페이지 분량의, 소위 말해 '벽돌 책'이다. 가방에 넣어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꺼내 읽기도 부담스럽고, 편안하게 누워 한 손에 책을 쥐고 책장을 훌훌 넘길 수도 없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책이 담고 있는 인류 잔혹사의 무게와 깊이를 온전히 숙고하며 읽어줄 것을, 책 그 자체로 이미 요구한다. 책의 표지와 정갈한 글자체로 적힌 제목 또한 이런 뉘앙스의 연장선으로 이 책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복잡하고 지루한 역사서는 아니다. 1939년에서 1945년까지 히틀러와 나치가 유럽 대륙을 점령하며 독일인의 전쟁을 펼쳤던 그 시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사건의 객관적 서술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전쟁'이라는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사건을 둘러싸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끔찍한 아이러니들을 풀어 낸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본질적 속성을 보이는 것은 언제인가. 좋은 날에는 모두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쁜 날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이런 관점에서 '전쟁'은 인간의 가면을 벗겨 내고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폭력적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처연하기 그지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서'이다. 전쟁 너머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숙고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연설을 무척 좋아한다. 누군가의 말이 이렇게 깊은 울림과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퍽 감동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들이 달변가가 되고 싶어 했던 것도, 직접 민주주의(제한적이었지만)의 시절에 광장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했던 사람들이 웅변술과 수사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심취했던 것도 모두 이 '말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말은 힘이 세다. 아니, 좋은 말은 힘이 세다.

하지만 막상 현대 사회에서 힘이 있는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잘 없다.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송에 나온 집권자가 하는 대국민 연설은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게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 하나로 모으기는커녕 자기변명이나 책임 회피의 얄팍한 이야기로 들리기 일쑤이다. 연설의 끝에는 섭섭한 마음이 들며 각자도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게 현실이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의 졸업식에서 지난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빛나는 미래를 축복해야 할 연설은 형식적이고 관습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설이 끝나면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지만 이는 연설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아닌, 지루한 연설이 끝났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이다. 이는 종종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집회나 모임에서 국회와 행사장에서, 단상에 선 사람들의 말이 진실과 신념의 이야기로 전달되지 않고 선동, 혹은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작동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 역사와 정치적 격변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결국 좋은 말을 '듣는 귀'를 가진 이들을 기르지 못한 까닭이며, 진실과 선함의 신념을 가진 철학자를 키우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더 좋은 말을 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삶의 지평을 넓히고 영감을 주는 연설을 만나면 퍽 반갑다. 영국의 여성 정치인 '이베트 쿠퍼'가 엮은 <여성이 말한다>는 바로 이런 연설 모음집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열외로 취급되어왔다. 이제는 저항할 때이다. 전 세대와 전 세계에 걸쳐 여성의 공적 언어를 장려 및 토론하고 기릴 때이다.' 『여성이 말한다』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저자 '이베트 쿠퍼'는 이러한 취지로 뛰어난 여성들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더 많은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여성 연설집을 출간했다고 밝힌다.

이베트 쿠퍼는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인 영국 의회에서 하원 의원을 지내는 등 소위 정치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찾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기까지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목소리의 힘'을 믿었다. 강인하고 진실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여성들의 연설에서 힘을 얻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역사 속 여성들의 연설을 발굴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발굴한 여성의 연설 사십 개가 실렸다. 2000년 전 고대 영국의 여왕인 '부디카'가 로마인과 최후의 전투에 출정하기 전 부족들을 상대로 한 연설을 시작으로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속에서 봉쇄와 단절을 거듭하는 영국 국민에게 바치는 온정적 헌사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연설까지, 시대와 계층, 인종과 문화를 막론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 케냐의 환경 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극우 극단주의자에게 피살된 영국 하원 의원 조 콕스, 여자 축구의 간판 스타인 메건 러피노, 북유럽의 소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 저자는 때로는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진실과 신념으로 무장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을 외친다. 말하자면 이 연설집은 40명의 연설가의 목소리인 동시에 엮은이 '이베트 쿠퍼'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지만 침묵하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인 셈이다.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연설'은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의 합이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짜인 구조도 중요하지만, 듣는 이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능력과 표현도 중요하다. 물론, 말하는 이의 삶의 궤적이 지금 하고 있는 연설과 배치된다면 아무리 달변이라도 간사한 속임수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 책은 각 연설가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침묵하지 않을 용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독자들은 이 소개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고, 처음 보는 연설가라고 할지라도 그 연설을 들을 준비를 갖춘다. 연설가에 대한 이베트 쿠퍼의 소개를 통해 연설가의 파토스에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구성이 퍽 좋았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연설의 전문을 싣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연설의 전문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연설이 '공적 말하기'이기 때문이다. 공적 말하기는 사적 말하기와 분명 차이가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많은 이를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제된 언어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국어 교육에서는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의 화법 단원에서 연설 교육을 필수로 하고 있으나, 막상 학교 현장에서는 연설문을 읽고 오지선다형 시험 문제를 푸는 것에 그치고 만다. 사실 이렇게 일회적으로 연설 교육을 한다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오랜 시간 동안, 좋은 연설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공적 말하기를 통해 펼치며 대중을 설득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여성의 목소리'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벽과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살아갈 희망과, 사람을 사랑할 희망과,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한 용기와 결단력을,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날들을 위한 믿음을 침묵하지 않고 외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굳이 '여성'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연설의 전문을 읽으며 그 연설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연설의 전략과 자질에 대해서도 공부하기에 좋다. 책의 디자인과 편집이 가볍고 부담이 없는데, 잠시 짬이 날 때, 출근길 지하철에서, 혼자 점심을 먹으며, 아무 곳이나 펼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런 진지한 독서의 목적에서 벗어나 단순히 삶에 대한 영감으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첫째는 원어가 병기되지 않아서 해당 언어 그 자체의 표현과 힘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외국어를 몰라서 병기해도 못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모르는 언어여도 소리 내어 읽어볼 때 전해지는 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연설은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이므로, 말하는 이의 톤, 강세, 어조, 목소리의 크기 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둘째는 40개의 연설 중 절반은 영국인의 연설, 대부분이 북미 유럽 국가의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동양인의 연설, 특히 우리나라 여성의 연설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건 저자 이베트 쿠퍼의 편향성 때문이라 볼 수는 없고, 그만큼 동양 문화권에서 연설의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 셋째는 저자 이베트 쿠퍼의 취지가 그러한 것이지만, 사회의 취약계층으로서 여성이 겪는 문제의식을 너무 서문에서 내세우고 있어서, '여성'이 아닌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수많은 갈등과 결단과 용기라는 자질이 오히려 희석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굳이 여성이라는 성별을 밝히는 것 없이도,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 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지음 / 싱긋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개인의 취향을 읊는 책들의 상당수가 얄팍하고 상업적이며, 결국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마냥, 읽고 나면 기억할 게 없는 잡서 수준에 머무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진심, 그것도 매우 진심이라는 점에서 보기 드문 책이다. 작가는 일본 위스키 증류소 이십여 곳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기록한다. 정말 순수한 애정과 취미에의 깊은 천착에서 비롯된 여행이며 기록이다.

일본 위스키는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다. 일차 세계대전 무렵 시작된 일본 사람들의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 기술을 배우기 위한 여행길을 떠나게 한다. 그들은 발효와 증류 기술을 배우고, 고국에 돌아와 증류소를 세우고, 다양한 스피릿을 생산하여 오크통에 보관하고 발효의 세월을 견디며 이 이국의 술을 철저히 일본화한다. 작가는 이십여 곳의 위스키 증류소를 견학하며 일본 위스키 시작의 순간부터 주세법의 변화에 따른 주류 산업의 정체기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외길을 걸어온 끝에 세계적 인정을 받으며 위스키 붐을 일으키기까지 하나의 산업이 걸어온 길을 세세하게 취재한다. 작가의 취재기에서 일본 위스키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좋은 맛과 향을 위해 최선을 마다하지 않으며,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최상의 위스키가 만들어지도록 수자원 보호부터 자연이 온전히 보존된 부지 선정과 보존의 노력을 기울인다. 증류소부터 원료, 오크통의 나무까지 순도 백 퍼센트의 일본 산을 만들기 위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인고의 시간을 견딘다. 근래에 들어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여러 번 선정되고, 현재 세계적으로 일본 위스키 붐을 일으키는 것이 결코 단시간의 우연에 근거하거나 자본과 광고의 얄팍한 유행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오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읽다 보면, 이것은 단지 '위스키'의 이야기가 아닌, 무엇인가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비즈니스,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중요 산업이기에 물질적 가치가 중요하고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본의 위스키 산업에는 물질을 넘어서는 장인 정신이 깊이 깃들어 있다. 현대로 올수록 희귀해지는 이런 사람들, 시간을 견디고 내적 가치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위스키 하면 스카치위스키, 스코틀랜드에서 만드는 술이라고만 알고 있던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묘한 끌림과 종내에는 묵직한 감동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위스키의 맛과 향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인생의 향취를 느끼기엔 정말 충분한 책인 것이다.

정직하다 못해 우직하게 기록을 강행하는 작가의 글에서 묘미 중 하나는 각 증류소의 대표자, 혹은 마스터블렌더의 인터뷰이다. 어떤 이는 '인생은 여행이다. 인생 여행 중에 위스키가 조금이라도 등장한다면 기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위스키 블렌더의 역할이 당장의 레시피뿐만 아니라 부족한 원주로도 품질 유지가 가능하도록 10년 후까지도 바라본다는 철학을 설파한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경영진의 요구보다는 장래를 위한 보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장인 정신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환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즐거움에 초대하는 이도 있고, 목재 가공이라는 과거의 전통적 기술과 특수성을 지닌 지역의 기술을 위스키 산업을 통해 순환시켜 글로벌하게 전개하는 것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이 글을 쓴 작가를 비롯하여 여기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일에 가장 진심인 사람들이다.

만약 작가의 위스키 여행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이 아닌, 구독자 수를 빨리 많이 늘려 상업적 이윤 창출이 가능한 유튜브 영상이었다면 이런 감동과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책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렇게 진심인 책을, 과연 초판 부수라도 다 판매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이 정직하고 진심인 책을, 쓰고, 출판해 준 사람들에게 감동을 얻는다. 위스키를 모르면 어떠하고, 술 한 잔 못 마시는 사람이면 어떠한가. 취향이나 관심이 서로 다른 게 무슨 상관인가. 자신의 삶을 편집하고 수정하여 보여주는 일에 익숙한 이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볼 줄 아는 가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무엇보다 위스키 마니아라면, 얼마나 이 책이 흥미진진할까! 사실 나는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알콜분해효소 제로인 인간이라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데, 살짝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작가의 의도는 꽤나 성공적이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책 속의 구절처럼, 감도 높고 잔상이 긴 취향을 나도 하나쯤은 인생의 여행길에 만들고 싶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테 『신곡』 읽기 - 7가지 주제로 읽는 신곡의 세계 교유서가 어제의책
프루 쇼 지음, 오숙은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테의 『신곡』은 고전 중에 고전이지만, 이제껏 한 번도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교유당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프루 쇼'의 『단테 <신곡> 읽기』를 제공 받았다. 이러한 책들은 저자가 원전에 대한 깊은 사랑에 빠져 오랫동안 작품과 작가를 연구한 결과물을 출판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원전인 『신곡』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의 목표대로 『단테 <신곡> 읽기』를 먼저 읽으며 『신곡』을 읽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막상 『신곡』을 읽으며 깜짝 놀란 것은 작품이 무척 아름답고 쉽게 읽히며 깊게 울린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신곡』에 대한 방대한 해석과 자료, 작가 '단테'와 그가 살았던 피렌체의 시대 문화적 배경을 '우정, 권력, 인생, 사랑, 시간, 수數, 말言'의 일곱 개 챕터로 나누어 제시하는『단테 <신곡> 읽기』를 읽는데 할애한 시간과 에너지가 더 컸다. 그럼에도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라는 든든한 길잡이가 있어 지옥과 연옥의 길을 헤쳐나갔듯, 나 또한 '프루 쇼'의 글을 길잡이 삼아 『신곡』을 읽을 수 있었다.

『신곡』의 테마는 궁극적으로 '여행'이다.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힘든 테마에 관한 긴 문학작품을 쓰는 노력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신곡』을 읽는 것은 길잡이는 있으나 결국 스스로 헤쳐가야 하는 지도 없는 이 광대한 문학의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지옥편」의 첫 구절을 넘기지 못하고 그 슬픔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지옥의 마지막 구덩이를 빠져나온 단테가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라고 말한 순간, 슬픔이 가장 고결한 눈물의 한 방울로 농축되어 세상에 흘러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의 인생길 한가운데에, 때로 우리는 올바른 길을 잃고,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으로 순례를 떠나야 하지만, 슬픔과 번뇌의 여행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고 사랑하며 수용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다시금 '별'이 뜨는 세계로 나서게 되리라.

인생의 여행길에 오른 모든 순례자들에게 이 책, 『신곡』을 추천한다. 그리고 우리가 넘어지고 두려워하며 발걸음을 멈출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누군가처럼 『신곡』읽기의 길잡이가 되어준 책 『단테의 <신곡> 읽기』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