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 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지음 / 싱긋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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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인의 취향을 읊는 책들의 상당수가 얄팍하고 상업적이며, 결국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마냥, 읽고 나면 기억할 게 없는 잡서 수준에 머무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진심, 그것도 매우 진심이라는 점에서 보기 드문 책이다. 작가는 일본 위스키 증류소 이십여 곳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기록한다. 정말 순수한 애정과 취미에의 깊은 천착에서 비롯된 여행이며 기록이다.

일본 위스키는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다. 일차 세계대전 무렵 시작된 일본 사람들의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 기술을 배우기 위한 여행길을 떠나게 한다. 그들은 발효와 증류 기술을 배우고, 고국에 돌아와 증류소를 세우고, 다양한 스피릿을 생산하여 오크통에 보관하고 발효의 세월을 견디며 이 이국의 술을 철저히 일본화한다. 작가는 이십여 곳의 위스키 증류소를 견학하며 일본 위스키 시작의 순간부터 주세법의 변화에 따른 주류 산업의 정체기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외길을 걸어온 끝에 세계적 인정을 받으며 위스키 붐을 일으키기까지 하나의 산업이 걸어온 길을 세세하게 취재한다. 작가의 취재기에서 일본 위스키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좋은 맛과 향을 위해 최선을 마다하지 않으며,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최상의 위스키가 만들어지도록 수자원 보호부터 자연이 온전히 보존된 부지 선정과 보존의 노력을 기울인다. 증류소부터 원료, 오크통의 나무까지 순도 백 퍼센트의 일본 산을 만들기 위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인고의 시간을 견딘다. 근래에 들어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여러 번 선정되고, 현재 세계적으로 일본 위스키 붐을 일으키는 것이 결코 단시간의 우연에 근거하거나 자본과 광고의 얄팍한 유행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오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읽다 보면, 이것은 단지 '위스키'의 이야기가 아닌, 무엇인가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비즈니스,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중요 산업이기에 물질적 가치가 중요하고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본의 위스키 산업에는 물질을 넘어서는 장인 정신이 깊이 깃들어 있다. 현대로 올수록 희귀해지는 이런 사람들, 시간을 견디고 내적 가치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위스키 하면 스카치위스키, 스코틀랜드에서 만드는 술이라고만 알고 있던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묘한 끌림과 종내에는 묵직한 감동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위스키의 맛과 향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인생의 향취를 느끼기엔 정말 충분한 책인 것이다.

정직하다 못해 우직하게 기록을 강행하는 작가의 글에서 묘미 중 하나는 각 증류소의 대표자, 혹은 마스터블렌더의 인터뷰이다. 어떤 이는 '인생은 여행이다. 인생 여행 중에 위스키가 조금이라도 등장한다면 기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위스키 블렌더의 역할이 당장의 레시피뿐만 아니라 부족한 원주로도 품질 유지가 가능하도록 10년 후까지도 바라본다는 철학을 설파한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경영진의 요구보다는 장래를 위한 보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장인 정신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환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즐거움에 초대하는 이도 있고, 목재 가공이라는 과거의 전통적 기술과 특수성을 지닌 지역의 기술을 위스키 산업을 통해 순환시켜 글로벌하게 전개하는 것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이 글을 쓴 작가를 비롯하여 여기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가장 좋아하는 일에 가장 진심인 사람들이다.

만약 작가의 위스키 여행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이 아닌, 구독자 수를 빨리 많이 늘려 상업적 이윤 창출이 가능한 유튜브 영상이었다면 이런 감동과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책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렇게 진심인 책을, 과연 초판 부수라도 다 판매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이 정직하고 진심인 책을, 쓰고, 출판해 준 사람들에게 감동을 얻는다. 위스키를 모르면 어떠하고, 술 한 잔 못 마시는 사람이면 어떠한가. 취향이나 관심이 서로 다른 게 무슨 상관인가. 자신의 삶을 편집하고 수정하여 보여주는 일에 익숙한 이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볼 줄 아는 가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무엇보다 위스키 마니아라면, 얼마나 이 책이 흥미진진할까! 사실 나는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알콜분해효소 제로인 인간이라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데, 살짝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작가의 의도는 꽤나 성공적이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책 속의 구절처럼, 감도 높고 잔상이 긴 취향을 나도 하나쯤은 인생의 여행길에 만들고 싶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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