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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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 1960~)

이 책은 30여 년 동안 발표한 단편과 미공개 단편들 중에서 10편을 골라서 엮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소설집이다.

불평꾼들_Complainers

항공우편_Air Mail

베이스터_Baster

고음악_Early Music

팜베이 리조트_Timeshare

나쁜 사람 찾기_Find the Bad Guy

신탁의 음부_The Oracular Vulva

변화무쌍한 뜰_Capricious Gardens

위대한 실험_Great Experiment

신속한 고소_Fresh Complaint

10편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각각의 개성을 뿜뿜 뽐내고 있다.

연예인 사유리를 딱 떠올리게 한 「베이스터」의 토마시나는 사랑과 결혼의 플랜 A를 8년 동안 진행했으나 비극적 이별로 플랜 B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결혼은 포기할 수 있지만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기증자를 찾아서 정액을 구하고 임신에 성공하는 비혼 여성 토마시나의 이야기와 그녀의 친구 윌리의 행동은 사랑일까? 이기적 유전자의 발동일까? 이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도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고음악」의 젊은 부부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육아와 먹고사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꿈을 접고 쥐 모양 봉제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2005년에 쓰인 이야기인데 지금도 별반 나아지지 않은 현실적 문제다.

「신탁의 음부」의 성性과학자 루스는 30년 전에 처음으로 만났던 양성 인간 펠리시티 케닝턴의 삶은 자살로 끝났지만 그 소녀로 양성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루스는 <인간 남녀한몸증의 성적 개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성별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가장 중요한 양육의 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명성을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성적 장애 및 성 정체성 클리닉'을 개원하고 온갖 사람을 다 치료한다. 하지만 3년 전 파파스 기쿠치가 현장 작업 결과물로 루스는 명예는 실추된다. 원시 부족을 연구하며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고 하는 루스의 이야기는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의 안줌이 생각나게 했다. 제3의 성 히즈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는 살아남은 다수의 힘으로 쓰인 역사의 힘으로 굴러가는 시대가 아니다. 다수의 권리만이 아닌 소수자들의 권리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가족, 노인, 결혼, 돈, 젠더, 관습, 고정관념, 인종, 범죄, 실업, 파산, 외도 등등등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회문제는 미국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끼지만 타협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삐딱한 애정의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던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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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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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노부코(1896~1973)는 가부장적인 근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주체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신선하고 자유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글들을 쓴 작가이다. 소녀소설이라고 해서 나는 80년대 유행했던 하이틴 로맨스랑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좀 결이 다르다.

물망초에는 고등여학교(지금의 여자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세 명의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공부보다는 낭만을 쫓는 온건파 아이바 요코, 닉네임이 로봇일 정도로 공부만 하는 강경파 모범생 사에키 가즈에, '나는 나, 양귀비는 양귀비'라는 생각을 하는 개인주의자 유게 마키코가 있다.

갑자기 마키코를 자신의 생일 파티 초대한 요코의 아버지는 재계의 거물이다. 대학교 교수인 마키코의 아버지는 기부금을 약속받기 위해 마키코에게 요코의 초대에 응하라고 강요한다. 어른의 갑과 을의 모습이 학교 친구인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요코는 자기 때문에 초대에 응한 거라 생각했는데 마키코는 사실 아빠의 기부금 때문에 온 거라고 곧이곧대로 말해버린다. 사춘기의 시간이었을 텐데 요코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가즈에가 놓고 간 손수건을 갈가리 찢는 그 마음. 얼굴이 벌게졌을 요코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마키코를 좋아한다는 요코, 마키코에게 선물을 받고 진지해지는 가즈에. 방황하던 마키코는 동생 와타루의 어떤 사건으로 요코와 절교를 하게 되고. 마키코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귀남이와 후남이(드라마 아들과 딸)로 대표되는 그 시절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으니까.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이 있으리라 믿었던 소녀 시절이 끝났지만 그때의 마음은 여전히 나를 잊지 말라며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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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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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얘기해 주는 작가, 오가와 이토가 새롭게 들려주는 앞이 보이지 않는 토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토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토와에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집 앞 정원에 향기를 지닌 나무를 심어주고 '토와의 정원'이라고 불러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음속으로 '수요일 아빠'라고 부르는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분이 있었고 엄마는 토와에게 시를 읽어주고 음식과 옷을 만들어 주고 단둘이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며 토와에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평화로웠던 토와의 삶은 이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수면제의 용량도 한 알 한 알 늘어만 가고 있었다.

열 살 생일날, 원피스와 초콜릿 케이크를 선물로 받은 토와에게 엄마는 최고의 생일 선물을 하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엄마와 외출을 한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듣는 세상의 소리에 노출된 토와는 너무너무 두려운 나머지 사진관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감각이 없는 토와에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무릎 뒤까지 자라는 시간이 흐른 후 엄마를 잊기로 마음먹고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알콩달콩 모녀의 삶으로 시작해서 버림받고 기다리다 지쳐가는 시간에 너무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토와가 세상에 내딛는 그 첫 발에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다. 부조리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야 할 이유는 살아있음으로 세상이 들려주는 노랫소리와 향기와 다양한 이야기에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잠이 들 때면, 엄마는 항상 이 시를 내게 들려주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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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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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부커 상과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19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평생을 집사로 헌신한 스티븐스가 새 주인을 만나고 생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직업관을 뛰어넘어 삶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복종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헌신이 있어야 하며 지금까지 영국의 달링턴 홀과 나리에 대한 헌신을 들려준다.


달링턴 귀족 가문의 장원을 자신의 삶의 전부로 여기고 헌신하며 살아온 집사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 사랑마저도 떠나보낸다. 그리고 30년 넘게 모신 주인 달링턴 나리와 달링턴 홀을 드나든 수많은 정치가들이 있었지만 사람만 착했던 주인 나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치에게 이용만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맹목적으로 주인을 섬긴 스티븐스는 허망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건 잠시뿐 새로운 주인을 만나고서는 그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지켜 나가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아닌 것을 느꼈음에도 자신이 여태 쌓아 놓은 것들이 무너질까 봐 고집을 피우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안타깝다. 노년에 다시 손짓하며 찾아온 사랑을 또 외면해 버리고 마는 그 고집을 과연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면서 대영제국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의 삶을 산 달링턴 경과 스티븐스가 보여준 삶이 광장에 모이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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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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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퍼킨스 길먼(1860~1935)은 1884년에 결혼했다가 1888년 별거를 선택하고 1894년에 법적으로 이혼을 한다.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들이 있는데 샬롯도 이혼과 별거가 금지된 시대에 파격적인 선택을 한 여성이었다.



신경 쇠약증 치료법으로 처방된 휴식치료법은 외부자극을 극도로 금지하고 두뇌 활동을 하루 최대 두 시간으로 제한하고 살아있는 한 절대로 펜을 잡지도 말라는 처방을 받았던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작품에 녹여 낸 자전적 소설이다.



권위 있는 의사인 존은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부정한다. 몸보신, 여행, 신성한 공기, 운동 등을 처방하고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모든 '일'을 금지당한다. 글쓰기도 금지 당해서 몰래 일기를 쓴다. 하지만 존은 상상하는 것조차도 최악의 행위라고 비웃는다. 치료를 핑계삼아 대저택에 감금된 듯 보이는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있게된다. 그 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벽을 보는 것이다. 누런 벽지로 둘러 쌓인 벽을 보고 그 벽지 무늬 뒤에 갇혀 있는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되고 점차 벽지를 벗어나서 기어다니는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된다.



첫 번째 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도 함께 누런 벽지의 무늬를 상상하기 시작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일기를 지나면서 괜히 방 안의 벽지를 쳐다 보게 된다. 마지막 열한 번째 일기에서 밧줄을 몸에 걸고 쓰러진 남편의 몸 위로 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부인을 비웃는 권위적인 남편의 기절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멀쩡한 사람도 방안에서 하루종일 벽만 바라보고 있으면 벽지의 무늬를 보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모든 '일'을 금지하는 게 어떻게 치료법으로 처방되었을까?



거의 모든 의사는 남성이었을 것이고 여성은 연약한 존재로 보호 받아야 한다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 치료법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160년 전의 당찬 샬롯 퍼킨스 길먼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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