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경제학 - '보이는 손'으로 시장을 지배하라
로스 M. 밀러 지음, 권춘오 옮김, 한경동 감수 / 일상이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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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효율성을 따지는 경제학은, 익손에 대한 저울질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론에서 보듯이, 모두 무죄로 인정받고 석방될 수도 있으나, 머리를 굴려 유리한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된다. 정도의 손실을 감안해서라도 손해를 덜 보려는 절충안은 결국 쌍방이 반의 손해를 보게 이르게 한다. 거기에는 물론 상대에 대한 불안한 신용의 문제도 고려되었다. 복잡한 인간 심리만큼이나 날로 복잡한 제도적 문제를 지닌 경제학은 더 이상 홀로 논할 수 없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 예측 불능인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심리학과, 예측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연 과학을 동반하여 경제학은 이제 상생 공존한다. 좀 더 스마트하게.

불완전한 시장에 낀 거품,제도적 불완전 등의 문제점을 실험 경제학으로 제어할 수 있는지 알아 보려는 것이 이 책이다. 실험 경제학에서의 시장 실험은 외부 세계로 향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현실을 위한 학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핵심은 옵션을 이해하면, 보이지 않는 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저술하고 있다.(p338)

시장은 정치,경제가 연동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정부의 옵션을 이해하는 것이 시장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의 옵션은 LTCM 사태나 블랙 먼데이 등 극한 상황에서만 행사되었고 실제로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실험자가 직접 정부를 능가하는 스마트 시장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이 당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비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묵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유시장 틀 내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는 더 이상 시장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정치인이 관심이 가지고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지난 8월의 S&P가 내린 미국의 신용 강등도 정치권의 싸움이 큰 원인을 제공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서, 정부의 규제권한을 스마트한 시장으로 옮겨 한층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시장 균형을 이루었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현재의 아슬아슬한 유럽발 위기를 안전대 위에 올릴 수 있는 스마트한 시장이 하루빨리 탄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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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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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몰랐던 일본 내 서글픈 역사의 산 현장을 찾아가 보다.



한일 역사를 되짚어가는 과정은 필수불가결하다. 동시에 아주 민감하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약 100년, 식민지 시대였을 당시 일본 정부에게 비인간적인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그리고 바야흐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일본 정부는, 아직도 그 잔악성을 치하할 뿐 대외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용기가 결여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야하는 시대 이면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한일간의 불편한 심리 관계가 지속되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 역사는 내게 고리타분했다.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지금도 듣기만 한다. (등한시한 까닭에 그것이 최선-.-)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했을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치명타이다. 최근에 우연하게도 일본의 만행이 그대로 드러난 책을 읽게 되었다.(얼마나 격분했던지.) 일본군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일삼았던 몹쓸 짓을 타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 꼼꼼함을 행사하며 미소짓던 내용들이었다. 식민지와 피식민지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은 그저 명목일 뿐이지 않을까. 그 악랄함이 도를 넘어 당사자와 일반인 그 짓을 행한 자신들의 가족조차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선까지 다달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왜곡되고 있는 한일 역사는 우리에게만 그치지 않음에 틀림없다. 그런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2세들이 진실을 배우고 자라온 타국의 2세들과 어떻게 수많은 국가간의 골치거리에서 합일점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한심한 노릇이다. 

 

스스로 역사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이 책을 용감하게 집어들었다. 비록 내 역사 지식이 짧을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오도하는 지금 일본의 작태는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진실의 증거과 증인들이 아시아 곳곳에 즐비함을 인식하고 있다. 이 책 역시도 그런 잔혹성 재발견에,한 몫. 절절한 산 현장 재발견에 두 몫. 보태어 주고 있다. '보타이시'란 말이 있다. 큐슈지방 방언으로 '쓸모없는 돌'이란 뜻이다. 일본인들이 키우던 개,고양이들의 묘에 비석처럼 세웠던 돌인데, 당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이렇게 묻혔다고 한다. 강제 징병 후, 그 인간 이하의 대우를 알만한 대목이다. 자결하지 못하면 중노동과 학대 고문으로 사라져간 한 맺힌 한민족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큐슈의 후쿠오카,나가사키,히로시마 혼슈의 오사카 그리고 최남단 오키나와 등 그 피맺힌 현장을 뒤밟아 직접 카메라에 담아 내고 있다. 일본 내, 탄광과 공군 기지,철도,통신 시설 등등 전시에 식민지인들을 금수만도 못하게 혹사시킨 현장의 보고가 가슴 아프게 아로새겨진다. 그런 현장의 사진들이어서일까. 대체적으로 화면이 어둡게 어둡게 조성되어 수록되고 있다.

 

전쟁과는 간접적인 세대이지만, 그 무참함을 생각하면 평화 갈망 열렬자가 된다. 한 세대를 거친 유족자의 쓰라림은 이루말할 수 있을까. 더 많은 화살을 받기 전에, 일본 스스로 어제의 잘못까지도 밝히고 용서와 보상을 해 주면 좋겠다. 일본은 내적 약소국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올바른 도덕심이 부른 결단이 더 요구되는 시기가 언젠가는 도래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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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 - 인생의 크고 작은 상처에 대처하는 법
안드레아스 잘허 지음, 장혜경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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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상처받았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다!

상처는. 쉽게 말로 내 비칠 수 없는 것. 하지만, 표정과 행동으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어린시절 내면의 깊은 상처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리만치 치명적이다. 그래서,현재는 각종 기관에서 늦지않게 상처를 치유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행복 연구가,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를 자주 거론하며 어린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주로 설명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에 대처하는 법 그리고 아예 상처를 주지 않는 법에 대해서 논한다. 근본적으로 상처는 무관심,평가,비교 등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은 회복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먼저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은 누구나가 상처를 받는다는 점이다. 나만이 그렇다는 생각 이제는 버려야 된다. 적어도 미래의 내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이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상처의 '회복 탄력성'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그가 받은 상처로 결국 파멸의 길로, 누구는 상처를 발판삼아 도약하여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한다. 타고난 성품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고,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 '쟝발장'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열린 마음'은 책이 꼭 희망하는 삶의 자세다. 열린 마음은 상처를 받기 쉽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받은 상처로 벽을 쌓는 이들을 의외로 많이 볼 수 있다. 상처로 둘러쌓인 방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장미를 가까이 하기 위해서, 가시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두려워하면 행복할 수 없게 된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상처는 끊임없는 생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이 타인의 상처일지다.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도 어린시절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상처 하나쯤은 있었겠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픔에 대해 곱씹고 싶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자취를 통해 의미있는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아픈 영혼은 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편견일지 몰라도...  그런데 이 책은 어째서, 이리도 맞춤 양복을 입은 듯한 딱딱함으로 무장한 것일까?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영양가있는 멘토를 옆에 두고 있다면 인생에 그보다 좋은 길잡이는 없다. 그렇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을 생각해 보라. 스스로의 힘으로 더 많은 설계를 해 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적격하다. 그런 아이들이 홀로 덥석 읽기에는 자기 만족적 교과서같은 느낌이다. 번역도 미끄럽지 못해서인지 어딘가 산만하고 주의를 끌지 못했다. 다행히도 인용문구는 내 눈에 비친 흐린 물에 월척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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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존 그리샴
존 그리샴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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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고백과 무고한 흑인의 자백이란 끈'으로 사법체계의 끈끈한 비리를 밝히다.

 

2007년 켄자스주에 거주하고 있는 가석방수, 보이엇의 머리에는 달걀만한 종양이 있었다.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그는 40대의 강간 흉악범으로 거짓말을 밥먹듯 해 왔기에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동일 시간 텍사스주에는 강간 살해범 혐의를 뒤집어 쓰고 자그마치 9년형을 산 20대 흑인 청년, 돈테 드럼이 사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두 죄수는 하나같이 풍전등화에 놓인 목숨이다. 그렇지만 진범과 오범이 뒤바뀐 운명 둘이다. 불의를 못 본 체 할 수 없는 정의의 눈 앞에서 후자의 운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누가 둘의 운명을 날조했을까.란 진실 물음에서 시작해서, 누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자격이 있을까.란 진중한 인권 문제로 이 책은 질문을 확산시킨다.


 

로비(돈테의 변호사) 역시도 이 가여운 흑인 청년이 무죄인지 아닌지 완전 확신은 어려웠을 것이다. 사건의 앞뒤 정황으로 도출해 보건데, 유죄일 확률이 낮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돈테 드럼사건은, 시체 없이도 재판에 회부되고, 유죄가 성립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법체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상식적으로 그런 설정에 호루라기를 불고, 레드카드를 미리 올리는 독자가 있을까 보냐만은. 일반적인 잣대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만행이 실제로 버젓이 행해지는 것은 막후에 권력이란 엄청난 비리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 영화,도가니도 거짓선,정의를 가장한 권력층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 도사리는 악랄한 수법은 발각되어야만 그들의 가면이 비로소 벗겨진다.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비리의 온상을 밝히고 기름칠 하는 것도 인간 시스템의 정의로운 한 면이다.

 

작가는 이 소설로 진실을 은폐한 현직 부패 형, 검사측을 비롯해 사법체계의 오점를 정정당당하고도 날카롭게 고발한다. 텍사스주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인물로 전 부시 대통령이 있다. 전통적인 공화당의 근거지로 알려진만큼, 보수 우파의 권력이 막강한 그 곳은 사형제도에서도 엄격한 그들만의 룰을 적용하는 주들 중 하나다. 감사의 말에 그리샴씨의 당부가 있었다.내용 중에 모순된 점을 지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구했다. 음?사법체계의 흐름을 알 리 만무한 까닭에, 궁금증을 유발했던 문구다. 알고 보니, 텍사스 주는 정신지체인들의 사형도 집행하는 악?랄한 명성을 구가하는 주이다. 그러니, 무고한 돈테를 구하기 위해 쓴 마지막 카드 중 하나인 정신분열증 환자 탄원서는 사실상 헛수고를 한 셈이였던 것이다.작가가 전직 법조계에서 일한 인물이어서인지 마치 실화같이 상세한 스토리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 오~만족스러운 책이다. 법지식이 풍부한 독자가 읽으면, 법 자체의 모순도 찾아봄직한 재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쩍 든다.

 

라이어,변호사. 우리는 그렇게 그들을 조롱해 왔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었다. <고백>으로 본, 라이어들은 하나같이 정의를 수호하는 형사,검사,사법체계의 대변인들이었다. 오로지 그들의 이익관계를 위해서 서슴치않고 거짓을 꾸며대고 있었다. 사형제도 폐지법에 대해서 줄곧 무관심했었다. 헌데, 억울한 돈테 드럼이 약물주사로 사형대에 뉘여질때, 절로 섬뜩하고 안타까웠다. 이 제도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면서... 누구나 거짓말을 행하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의 무게가 차별되어야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책에서처럼 한 쪽의 이해관계 탓에, 잘못된 판결이 내려질 경우도 고려해아만 하는 것이다. 저자가 돈테를 죽여가면서까지, 밝히려고 했던 더 큰 어두운 진실에 그의 죽음 이후로 점점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울분과 희망이란 9년의 세월이 절망으로 종결될 때, 다른 방향으로의 더 큰 희망을 품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것은 남겨진 변호사,로비의 몫이기도 했고 진정한 법체계를 실행하고자 했으면 한, 남은 양심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뭐,너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돈테의 모습이 보상되기를 바란 입장에서 속시원한 복수를 기대했던 탓인지, 현실에 부합되는 그럴싸한 결말은 한껏 부풀었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런 심심함에도 적절한 개연성을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은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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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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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색감각을 소유한 저자, 색역사 에세이집을 내다.
 

색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으례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조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개인의 개성만큼이나, 색의 개성 또한 톡톡 튀어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거듭나는 것이 색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색 자체보다 물체의 형체에 더 민감했던 것 같다. 다만,때때로 특별한 날을 위한 옷에는 색에도 신경 썼던 기억이 있다. 대체적으로, 구분 기능으로의 색을 일부는 단순하고 일부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수용했고 길들여졌었다. 나를 표현하는 색은 무엇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색의 대해  깐깐하게 고찰해 보지 않았던 거다. 색은 워낙 다채로운 까닭에 그 표현력에 한계가 있거니와, 인식의 차이가 주는 다른 시선도 은연중에 부담임을 알았다. .. 같은 색이라도, 옅고 짙은 농담에 따라 색은 그라데이션이 있다. 그래서 매칭하는 대상에 따라 아주 미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색감이 있어도 쉬이 얻어내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색이 있다. 그 색에 대한 아련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색 때문에 전혀 다른 자신이 연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성 말고도, 색은 기호의 유사성도 있다. 마치 선입견과 법칙처럼 성별과 나라에 따라 못박혀 있다. 이를테면, 여성은 대체로 붉은 계통으로 표현되고 분홍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남성은 한결같이 파랑색이다. 이 파랑색은 유럽대륙에서 절반의 지지로 변치않는 1위로 사랑받는 색이라고 한다. 오륜기의 상징성과 연관된 것일까. 오륜기는, 유럽-파랑,아프리카-검정,아메리카-빨강/아시아-노랑,오세아니아-초록으로 대변된다. 그렇다고 아시아인이 선호하는 공통색이 노랑이라는 통계는 없는 것 같다 . 나만 해도, 노랑색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굳이 말하자면, 기본색이 아닌 이차색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색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혼자 술렁댔는데, 이 모든 것이 이 책의 여파다. 하얀 바탕에 아래로 색동띠를 두른 이 책은, 메디치상 수상작이란다. 찾아보니, 이것은 프랑스 4대 문학상(공쿠르,르노도,페미나 메디치) 중 하나로 그 중 가장 젊고 색깔이 분명한 상임을 알았다. 새로운 문체나 실험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신진작가 혹은 무명작가를 독려하기 위해 가장 늦게 제정된 상이다. 에세이는 개인적으로 팍 와닿지 않는 거림감이 있었다. 너무 평범한 소재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금방 식상해졌다. 그런데, 이 책은 에세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색'이라는 끄집어 내기 쉽지 않은 참신한 주제를 택했다.그리고 주/객관적인 시각으로써 대중적이고도 학술적인 양면으로 다채롭게 묘사했다.한 권의 책을 펼치기 위해서, 참으로 정성스런 조사를 거쳐 진지하고 유머스럽게 이끌어냈다. 물론, 재미있게 웃을 수 있었던 부분은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모호한 색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학자들의 노력이 결국은 색에 대한 대중의 신비를 깨뜨렸다고 말하는 파스텔님께(->파스투로,저자의 성입니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단순함에 그쳤을지 몰랐을 색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써 오늘날 고광도의 빛을 발하는 섬세한 컬러로 재탄생한 계기를 제공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색이 빛,지각,감각의 재료라고 정의한 문장은 참 아름다웠다. 이제는 더이상 하나가 하나가 아닌 세상이 되고 말았다. 눈과 뇌의 짝으로 인식되는 감각적인 색을 허심탄회하게 논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세상이다. 저마다의 눈에 비친 감각적인 색을 묘사하는 사람만이 각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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